[임동섭의종교칼럼] 에콰도르 이야기(9)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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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이야기(9)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선교!
‘포르노’로 약칭되는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Pornographos’에서 왔다고 합니다. ‘Pornographos’는 창녀(pornoi)와 그림(graphos)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라는 영어 단어는 1857년 영국 내과의사 '로블리 던글리슨(1798~1869)'이 집필한 '의학용어집'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던글리슨’은 포르노그래피를 '매춘부나 매춘을 공중보건의 한 문제로 묘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후 ‘포르노그래피’라는 단어는 10년도 안 돼 '음란물'이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정치 포르노(Political Porn)’ ‘푸드 포르노(Food Porn)’ ‘감동 포르노(Inspiration Porn)’와 같은 단어에서 보는 것처럼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의 준말인 ‘포르노’가 접미사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 포르노'라는 말은 1500년에서 1800년 사이 유럽에서 정치적 권위를 비판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태어난 단어라고 합니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시대의 왕족과 귀족들의 문란한 성생활을 묘사한 포르노물은 '정치 포르노(Political Porn)'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푸드 포르노'라는 말이 있습니다. 음식(Food)과 ’포르노(Porn)'라는 단어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 만드는 과정을 자극적으로 전달해 식욕을 이끌어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감동 포르노’라는 말은 예를 든다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장애인을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억지로 감동거리로 만들어 비장애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태도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이제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빈곤 포르노‘란 상업적 목적 또는 자선 행위나 특정 사안에 대한 지지를 늘리는데 필요한 동정심을 이끌어 내고자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부각하는 모든 형태의 미디어(서면, 사진, 영상 등)를 의미합니다. ‘뉴욕타임스’의 ‘Alice Miles’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에 대한 비판에서 처음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영화는 슬럼가 아이들의 삶을 묘사하면서 가난과 범죄, 경찰의 폭력과 아이들의 고통을 자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기사 이후 영화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빈곤 포르노’ 또는 ‘슬럼 관음주의’에 관한 논의들이 활발해졌습니다.
사실 우리는 TV나 신문 등 미디어를 통해 자주 '눈길을 끄는 불쌍함'을 목격합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갈비뼈를 드러내는 앙상한 몸과 퀭한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동영상이나 사진은 국제구호단체 광고의 일반적인 ‘클리셰(Cliche)’입니다. ‘클리셰(Cliche)’라는 말은 '진부한 표현이나 상투적인 말을 의미' 하는 프랑스 용어입니다.
모금방송을 위해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를 촬영하러 간 제작진이 아이가 자신이 가진 가장 예쁜 옷을 성의껏 차려입고 나타나자 방송 내용과 맞지 않는다며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요구했다는 사례나, 에티오피아 시골마을의 식수난을 촬영하러 간 한 방송사가 적절한 '그림(?)'이 나오지 않자 가축이 이용하는 작은 연못에 아이를 데려가 물을 마시는 장면을 연출하려고 시도했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빈곤 포르노’에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며, 받는 사람들의 무능력과 게으름이 부각되고, 반대로 후원하는 사람은 자선을 행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기만족에 빠지게 됩니다. 저개발국가 사람들의 가능성과 다른 장점들은 외면당하고, 지속적으로 원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기억에 남게 됩니다.
선교지에서도 ‘빈곤 포르노’ 방식이 꽤 많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선교 비를 많이 모금하는 선교사는 미디어 활용과 자기 홍보에 뛰어납니다. 선교사들은 후원자들이 감동하도록 어느 정도 각색이나 과장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에콰도르는 빈부 격차가 아주 크지만 일반적으로 에콰도르의 경제 사정은 미국이나 한국보다는 낮습니다. 제일 큰 도시인 ‘과야킬’ 중심가는 웬만한 미국의 도시보다 더 화려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도심에서 벗어나면 상하수도 시설이 없습니다. 우리 부부는 에콰도르 선교사입니다. 선교 보고할 때 ‘빈곤 포르노’를 쓰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과장이나 각색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선교 보고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실한 선교사라면 거대한 프로젝트의 추진에 목을 매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을 복음으로 거듭나게 하며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헌신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결국 선교사가 바라는 것은 선교사의 만족보다는 선교지의 현지인들이 빠른 시간 안에 자력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지인들이 동반자라는 생각으로 사역해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현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 가난한(?)’ 행동을 하면 왠지 모를 불쾌감과 열등감이 들기도 합니다. 현지인들은 기본적으로 먹고 잘 정도만 도와줘도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후원자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행복만 허락되는 선교지, 이것은 바로 우리가 미디어에서 쉽게 노출된 ‘빈곤 포르노’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진#1: 빈곤 포르노의 사진
사진#2: 에콰도르 대통령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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