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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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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섭의종교칼럼] 그거 쌤통이다!

임동섭
2020.09.15 12:27 1,60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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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쌤통이다!

(임동섭 목사 / 에콰도르 선교사)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공평한 대우를 받기 원합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내가 열심히 일한 만큼 공평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만 못 참는 것이 아니라 원숭이도 못 참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2003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차별과 관련된 재미있는 실험이 소개되었습니다. 미국 에모리 대학교의 ‘사라 브로스넌’과 ‘프란스 드 발’ 박사가 ‘꼬리 감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공평과 불공평에 대한 반응실험을 한 것입니다. 조건은 이렇습니다.


원숭이들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누고 작은 돌멩이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원숭이들에게 돌멩이를 받고 보상인 오이를 건네자, 두 그룹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돌멩이를 지불하고 오이를 받았습니다.


다음 실험은 불공평한 조건이었습니다. A그룹에게는 오이를 주었습니다만, B그룹에게는 포도를 주었습니다. 달콤한 포도를 받는 모습을 보고 A그룹의 일부 원숭이는 돌멩이 지불을 거부했고, 일부는 지불하기는 했지만 보상으로 받은 오이를 내던지며 음식 먹기를 노골적으로 거부했습니다.


똑같은 실험을 암수 짝을 이룬 A·B 원숭이에게 시도했습니다. 일의 대가로 오이를 제공하자 둘 다 좋아했습니다. 나아가 암컷에게 오이 대신 포도를 제공하자 의외로 수컷이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고 암컷의 일까지 거들었습니다. 수컷은 맛없는 오이를 먹고 암컷은 맛있는 포도를 먹었지만 둘에게 주어진 일의 양을 말끔히 끝냈습니다.


A·B 원숭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암수 한 쌍인 C·D 원숭이에게 일을 시키고 C에게는 오이, 암컷인 D에게는 포도를 주었습니다. 수컷인 C는 모른 체했으나 A·B는 난리를 쳤습니다. 곧바로 일체의 음식을 거부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공평성 안에 불공정 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꼬리 감는 원숭이’들은 불공정하게 대우받는 것을 매우 싫어하면서도, 더 좋은 보상이 자신에게 불공정하게 주어졌을 경우에는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쌤통의 심리학(The Joy of Pain)’이라는 책에서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발견했습니다. 야영을 하던 두 사람이 숲속을 걷다가 커다란 곰을 만났는데, 둘 중 한 명이 갑자기 등산화를 운동화로 갈아 신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지켜보던 다른 한 명이 그런다고 곰보다 빨리 뛸 수 있을 것 같으냐고 야유하자,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곰은 이길 필요 없어. 너만 이기면 돼!”


제 아무리 비교하지 말자고 다짐해도 인간은 타인과 비교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끝없이 달려갈 수 없습니다. 해결책은 내 옆의 경쟁자보다 조금 나아야 합니다. 뉴요커인 한 만화가는 이런 심리를 “내가 일등석을 타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내 친구들이 이등석을 타야지!”라고 표현했습니다.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프지만, 남이 안 되면 기분이 좋습니다. 둘 다 질투에서 비롯한 감정인데 전자는 찝찝하고 후자는 통쾌(?)합니다. 전자는 따라가는 데에 노력이 필요한 데다 확률도 반반이지만, 후자는 가만 앉아서 내가 그보다 나은 상황에 이르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그에게서 얻을 이득의 가능성이 있지만, 후자는 그를 더 낮은 곳으로 보내면 보낼수록 나의 상대적 위치가 높아지니 손해 볼 게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쌤통은 ‘우월감은 황홀하다!’, ‘남의 열등함은 나의 자양 강장제!’, ‘남들이 실패해야 한다!’, ‘인간 본성의 두 얼굴은 이기심과 이타심’, ‘원수의 고통은 더 달콤하다!’, ‘남의 망신은 나의 즐거움!’과 같은 마음을 다 포함하고 있는 심리적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1989년 일본의 ‘이시하라 신타로(당시 도쿄도 지사)’와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회장 공저로 국제적 화젯거리가 됐던 책은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었습니다. 89년이면 아직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하기 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이 미국에 이어 새로운 패권국가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난무하던 때였습니다.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한 일본인들은 미국 자산들을 무더기로 사들였습니다. ‘이시하라’가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친 것은 우월감과 자신감의 발로였습니다.


요즈음 중국을 보면 1989년 당시의 일본이 떠오릅니다. 중국이 2030년이 되면 세계 일등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2인자로 만족하면서 다른 나라들과 상생의 길을 걸었다면 더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통치권’과 ‘소유권’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통치권과 소유권을 행사하고 싶은 본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질투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질투는 환경적응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생존과 번식에 있어서 남들보다 뒤처져 있음을 경고해주기 때문입니다. 질투심은 때때로 우리의 적응력을 높여줍니다. 인생의 경쟁 터에서 질투는 자원을 늘리고 사회적 지위와 그로 인한 이득을 더 높게 올리도록 합니다.


내가 상대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있으면 남의 실패를 안타까워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내가 상대적으로 실패한 입장이라면 남의 성공을 기뻐해주기가 어렵게 됩니다. 지나친 질투심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서로 상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 참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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