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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섭의종교칼럼] 에콰도르 이야기(14) 에콰도르의 작명! 2020.12.22 11:52

최고관리자
2021.03.05 09:35 2,86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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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이야기(14)

에콰도르의 작명!


1989년 M그룹 미국지사에 부임했습니다. 제일 먼저 운전면허증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필기시험만 봤습니다. 한국면허증을 인정했기 때문에 실기 시험은 면제되었습니다. 


제일 놀라운 일은 접수한 후 바로 시험을 치렀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300명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시험을 치렀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한국어로 시험을 봤습니다. 5분 만에 만점을 받았습니다. 잠시 후에 운전면허증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내도 약 1달 반 만에 미국에 도착하자 마자 운전면허 시험을 봤습니다. 그러나 금방 면허증이 발급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성’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으로 바뀌는데 아내의 여권에는 ‘성’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국으로 조회하였고 한국으로부터 답변을 받기까지 3일이나 걸렸습니다. 


에콰도르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이름이 대부분 길었습니다. 에콰도르는 장기간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스페인 작명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이름 짓는 관습은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같이 사용합니다. 첫째 성은 아버지의 첫째 성을, 둘째 성은 어머니의 첫째 성을 씁니다. 


예를 들면 이름이 'Bastidas'이고, 가운데 이름이 'Silva'이고, 아버지의 첫째 성씨가 ' Fernando'이고, 어머니의 첫째 성씨가 'Septimo'이면, 'Bastidas Silva Fernando Septimo'라고 씁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이름을 ‘짓는다’고 합니다. 가문의 항렬에 따라 이름을 짓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자녀의 이름을 ‘짓는다’기 보다, ‘선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의 인물들 또는 역사적인 위인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정하기 때문입니다.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 그리고 호주 사람들은 옛 이름을 선택하는 문화에 살고 있고, 한국과 같은 동양은 이름 창작 문화 살고 있습니다. 


이름은 가볍지 않습니다. 누구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름은 그를 상징하고 대표합니다. 이름은 사회적 관계와 그의 삶 그리고 그가 해낸 일에 대한 평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실체가 됩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의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실존적 성찰이 주는 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이나 사물, 단체, 현상 등에 붙여서 부르는 기호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 주어짐으로써 사물은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고, 의미를 얻게 됨으로써 존재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민들레나 개나리가 우리들에게서 구체적인 이름을 얻고 있는데, 길섶에 있는 풀들은 구체적인 이름을 얻지 못하고 그냥 잡초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잡초는 우리 인간에게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민들레나 개나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민들레면 민들레지 그것들 하나하나에 따로 붙여진 이름이 없습니다. 그냥 돌멩이면 돌멩이고, 바위면 바위 지 그 이상의 다른 이름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건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특정한 의미를 지니게 되면 이름을 얻게 됩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주인들에게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코코’ 또는 ‘버디’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개가 울타리 밖을 나서면 그저 누구 네 개일 뿐 ‘코코’ 또는 ‘버디’가 되지 못합니다. 남들에게는 그냥 개라는 짐승의 의미만 지닐 뿐 그 이상의 유의미한 짐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다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름이 있고 그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합니다. 이름을 알 필요가 없거나 모르는 경우에는 그냥 어떤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고유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하나가 유의미한 개체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의 수단이 아니라 바로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실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단어가 나타납니다. 존재가 이름을 뜻하는 바와 같이 이 세상에 존재한 사람으로 이름 없는 사람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설령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이름이 없는 한 누구도 그 사람을 기억하거나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름은 인간생활은 물론 본질적인 존재의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의 출생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작명가이십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하늘(핫솨마임)과 땅(하아레쯔)을 창조하시고 빛(오르)을 창조하셨습니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이름은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빛은 낮이라 칭하시고 빛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칭하셨다(히브리어 '카라 엘로힘')!“는 의미는 이름을 지을 때 사명을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인의 이름을 사명의 이름으로 개명하셨습니다(칭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크리스티아누스)’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 받았습니다(행 11:26).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뜻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기름 부음을 받은 3직분에 따라 복음의 왕과 복음의 제사장과 복음의 선지자의 사명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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