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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섭의종교칼럼] 세습되는 능력주의!

임동섭
2021.05.05 01:45 1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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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되는 능력주의!

임동섭 에콰도르 선교사


어느  교회에 돈 많은 장로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 일에는 그다지 충성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뜻밖에 그에게 심장병이  찾아와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소식을 듣고 심방을 갔습니다. "장로님, 병세는 좀 어떠하십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후에 원장선생님이 와 보셔야 알겠습니다." 바로 그때 원장선생님이 간호사 한 사람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왔습니다. 원장선생님은 장로님을 이리저리 진찰을 하더니 갑자기 간호사에게 "간호사, 빨리 가서 장의사를 불러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로님은  그 소리를 듣고 직감적으로 이제 자기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급하게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종이에 1억이란 숫자를 적고, 그 밑에 자기 이름을 적고 사인을 했습니다. 목사님에게 건네 주면서 그 금액을 헌금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밖에 나갔던 간호사가 젊은 의사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원장선생님은 젊은 의사를 보더니 야단쳤습니다. “이봐,  장의사! 진찰을 했으면 차트에 기록을 남겨야 지. 이렇게 비워 놓으면 어떻게 하나? 이 정도 같으면 퇴원을 시키지 왜 환자를  이렇게 붙들어 놓고 고생을 시키나?” 알고 보니까 젊은 의사의 성이 ‘장씨’ 였습니다.


장로님은  깜짝 놀라서 다시금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제가 조금 전에 써 드린 숫자에서 동그라미 하나만 좀 지위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헌금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려야 지 저 혼자 독차지해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조금 양보하지요.”


위의  이야기에는 깊이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능력주의입니다. 신학적으로는 공로(선행, 행함)주의입니다. 장로님이 교회(하나님)의 일에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적립된 선행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돈(헌금)으로 대체하려는 생각입니다.


현대 이전의 시대는 세습의 시대였습니다. 재산을 세습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부정이 일어났습니다. 평등하지 못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능력’ 이라는 것이 동일하게 세습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명문대학에 합격하는 사람들 중에 70%는 소득 분포가 상위 5%의 가정 출신입니다. 예전에는 교육을 통해 ‘개천에서 용 난다!’  는 속담이 자주 거론되었지만 이제는 ‘개천이 다 말랐다!’ 고 합니다. ‘금수저’, ‘흙수저’ 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능력이 세습이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통계를 보면 교육을 통해 신분이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돈을 자녀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이제는 자녀에게 돈이 아니라 능력을 물려주는 엘리트 세습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또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세습된 능력으로 엘리트가 된 사람들은 자신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얻은 것이라는 착각을 합니다. 이런 착각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교만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소위 ‘갑질 사건’ 도 능력주의의 또 다른 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엘리트들이 능력으로 많은  것을 독식하기 때문에 중산층이 사라지고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현상은 엘리트들에게는 무한 경쟁이 주는 압박으로 스스로 쉬지 못하는 올무가 되었습니다. 또 중산층의 붕괴는 일반 서민들에게  엘리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가정교육도 인격 함양이 아닌 능력주의 적인 입시와 취업용 교육으로 변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런 능력주의 사회의 모순과 어려움에 대해서 ‘신 없는 섭리론’ 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모든 성취를 은혜의 결과가 아닌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엘리트주의가 만연할수록 더욱 불평등이 가속된다고  말했습니다. ‘엘리트 세습’ 과 ‘공정하다는 착각’ 은 능력주의라는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능력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은 첫째 복음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심한  박해 가운데서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 원동력이 바로 ‘은혜로 인한 구원 교리’ 에 있었다고 신학자 래리 허타도(Larry  Weir Hurtado)는 분석했습니다. 다른 종교는 제사의식이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만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지 않고 대신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능력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한 두 번째 대안은 바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윌라드’ 는 “삶의 급하고 바쁜 것을 가차 없이 제거해야 합니다. 바쁨은 우리 시대 영적인 삶에서 가장 큰 적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능력주의가  위험한 이유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리하려면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영원하지 않은 가치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영끌’(영혼을 끌어 모으는 것)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이 시대의  능력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바쁘게 사는 것이 멋있는 삶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쁜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능력(노력, 행함)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갑니다! 그러므로  능력주의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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