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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섭의종교칼럼] 이생망과 탕핑주의

임동섭
2021.06.03 06:14 3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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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망과 탕핑(躺平; 탕평)주의

임동섭 / 에콰도르 선교사

 

젊은이들의 절망감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에는 구조조정이 최대 이슈이었습니다. 기업들은 정리해고를 했습니다. 이 때 조기(조기퇴직), 명태(명예퇴직), 황태(황당퇴직) 등의 신조어가 쏟아졌습니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2000년대 초반에는 ‘대박’ ‘부자 되세요’와 같은 신조어가 유행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일상이 됐습니다.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졌습니다. 사오정(45세 정년),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캥거루족(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20~30대),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 88만원 세대, 중규직(정규직으로 비정규직 처우를 받는 노동자)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삼포세대’가 등장했습니다. 삼포는 3가지를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들이 늘어났습니다. 오포세대가 되었습니다. 경력과 집을 포기하는 것이 추가되었습니다. 이어 칠포세대는 꿈과 인간관계 포기가 더해졌습니다. 구포세대는 건강과 외모까지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N포세대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사오정, 사필귀정(40대엔 반드시 정년퇴직),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 육이오(62세까지 일하면 오적) 등 4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한 신조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삼팔선(38세 퇴직), 장미족(장기간 미취업 졸업생), 이구백(20대 90%가 백수) 같은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신조어의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를 생각해야 한다), 십오야(15세만 되면 눈앞이 캄캄해 진다) 등 10대가 겪어야 할 취업난을 풍자한 신조어도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생망’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의미입니다. 신조어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중공의 젊은이들도 탕핑(躺平; 탕평)이라는 단어로 절망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탕’은 누울 탕, ‘평’은 평평할 평자입니다. 탕핑은 무릎 꿇기는 싫고, 서있을 힘이 없으니 아예 누워버리겠다는 자세입니다.

 

그들은 “탕핑을 하면 부귀를 누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본전치기는 한다. 탕핑을 안하면 자본가만 살찌울 뿐이다. 피곤하게 일해 봐야 얻는 것은 병뿐이다. 평생 번 돈을 병원에 가져다주게 된다. 아등바등 살아봐야 남는 게 없다.”라고 말합니다. 취직하는 것, 돈 버는 것, 이성을 사귀는 것, 결혼하는 것, 애를 낳는 것, 집을 사고 차를 사는 것을 모두 포기하고 사는 것이 탕핑입니다.

 

중공에서 유행하는 삽화입니다. ‘일어나라고 하자 이번 생에는 가능성이 없다!’라고 대답합니다.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지만 얼마나 삶이 고되면 그럴까 라고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대략 2억 명이 탕핑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탕핑 족들의 명분도 있습니다. 풍진 세상에 좀 게으름을 피우고 개인적 충전의 시간으로 삼는 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 봐야 물가와 집값은 뛰어서 따라 자을 수도 없으니 없으면 없는 대로 살겠다고 합니다. 물욕, 성공욕, 결혼욕구, 자녀욕구를 모두 버리면 차라리 편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예전처럼 출가할 수도 없습니다. 도교나 불교의 사찰도 이미 상업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성홍기를 올리고 국가를 제창하는 공산당의 선전 도구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빈둥거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통화가 팽창하고 기업들도 도산하는 상황에서 굶어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 탕핑족들의 철학입니다.

 

처음 '이생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번 생이 망했다고 한다면 다음 생을 기대한다는 의미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다음 생을 믿기 때문에 한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령 다음 생을 믿는다 해도 이번 생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8월에 함경도에 우박이 내렸습니다. “우박이 큰 것은 밥그릇만 하고 작은 것은 주먹만 하였다. 12살 된 아이가 우박을 맞고 죽었고, 새와 짐승 및 냇가의 물고기까지 대량으로 죽었다. 농민들이 진을 치고 모여서 못살겠다고 통곡하는 소리가 들판을 진동시켰다(현종실록 11년 8월 11일).”

 

그 당시 말세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3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구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20대에 인생이 망했다면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이번 생은 축복이었다!”라는 ‘이생축’이나 “이번 생은 축복을 받아 찬란하였다!”라는 ‘이생찬’이란 말을 쓰면 좋겠습니다.

 

 

 

일어나라? 이번 생에는 가능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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