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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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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전설의 투수 인호봉 선수 소천

박명근 레벨
2021.12.20 02:09 2,28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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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habaseball.jpg

 (1982년 백호기 대회에서 대학 정상을 차지하고 기쁘하는 인하대 선수들)

inhobong.jpg

 (2018년 기호일보와 인터뷰 중인 인호봉 선수 모습)

 

인하대를 야구 명문대로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한 인천이 낳은 최고의 투수 인호봉 동문 잠들다.  고교야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40 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한 인천고 출신 인호봉 선수, 그가 18일 인천에서 63세를 일기로 소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인생무상을 느낀다.

 

77년도 창단한 인하대 야구팀 주축 선수로 국가대표 선수급 인호봉(투수), 김진우(포수), 양승관(외야수), 장정기(유격수) 등 실로 쟁쟁한 선수들로 구성 80년대 대학야구를 석권하게 한 주역 중 한 명이다.  그 당시 프로팀이 없던 한국 야구계에서 고교 야구와 대학 야구가 엄청 인기가 높았다. 그리고 기라성 같은 아마추어 스타 선수들이 얼마나 그 당시 많았나? 연대의 최동원, 한양대의 장효조, 이만수, 김시진 등, 그리고 동아대의 임호균 투수등 역대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그런데 3학년 차 부터 그 전설들을 뭉개고 상위권에 이름을 당당하게 올렸던 후배 선수들을 얼마나 좋아 했던가? 

 

인호봉 선수와 개인적인 인연은 복학 후 만난 연이었다.  그 당시 과대표로서 그들의 학점관리(?)를 맡아 놓고 했다.  교수님들에게 이 친구들은 운동 선수이므로 학점 좀 특별히 잘 해달라고 읍소(?) 하면서 꽤나 이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로 연을 맺었다.  비록 창단 초기에는 부끄러운은 7회 콜드게임 패도 하더니 3학년 때 부터 그 당시 야구 명문대였던 한양대, 동아대 , 연대등도 꺽고 준결승도 진출하더니만 나중에는 기어히 우승도 차지, 그때 부터 난 인하 야구에 미쳤던 것 같다. 

 

야구의 열정으로 인해 교수님들에게 참 나쁜 짓도 많이 했다. 인하대 팀이 동대문구장에 야구가 있는 날은 아예 교수님들에게 휴강을 종용, 학우 각자의 가방에 소주병, 땅콩 오징어 등을 적절히 배분(너무 가방이 부풀면 입구 경비원들에게 빼았기므로) 동대문 구장으로 내 뺀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근데 교수님 한 분은 분명히 수업 중간에 내가 뒤에서 손 신호를 보내면 일찍 강의를 끝내기로 사전 합의까지 하고도 끝까지 강의를 진행, 우리들의 동대문 행을 좌절 시켰던 분이 계셨다. 그 다음부터 그 교수님 강의는 신사협정 없이 우리가 단체 결강으로 보복하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짓도 많이 했었다. 

 

인하 팀 벤치 위에 자리잡고 단체로 목청 높여 응원하던 그 맛이 학교 다니는 즐거움이 었다고 할까? 우리가 벤치 위에 자리하면 이 친구들이 줄줄이 나와서 거수 경례를 하면 괜히 우쭐했던 그 시절. 인호봉 선수는 좀 까칠 했지만 참 선배에게 깍듯햇던 후배였다, 그 당시 운동 선수들도 기숙사에서 같이 생활했기에 더욱 가까이 지냈다. 김진우, 양승관(철완 어깨로 외야에서 포수에게 송구할 때 빛의 속도로 빨래줄 처럼 정확하게 날아 들어 와 상대 선수를 잡던 모습은 일품)등 정말 듬직한 후배 선수들이 잘 치고 잘 던지던 날은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큰 즐거움이 없었다. 야구팀들로 인해 나는 인하를 더욱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그 야구 선수 중의 한 명인 정인규(인고 3번 타자) 선수가 인호봉과 함께 인하대로 온 선수였는데 그 친구가 학과 후배로 오면서 연이 다았고 자기 누나를 나에게  소개해 부부의 연으로 살아오고 있으니 이래 저래 나도 인하 야구팀하고 인연이 꽤나 있는 셈이다. 처남은 고교에서 너무 선수로 무리해 척추가 이탈되는 허리 부상으로 군대도 면제되어 선수 생활을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 인호봉 선수도 너무 고교에서 혹사 되어 첫 창단 삼미 프로 구단에 입단해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고 알려 진다. 고교 야구 감독들의 승부욕으로 어린 선수들을 무리하게 등판 시키거나 혹사 시켜 소질있는 선수들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던 한국고교 야구의 문제라는 기사가 생각난다.

 

이젠 다 잊고 사는 연이지만 인호봉 선수의 타계 소식을 들으니 그 열정적으로 뛰어 다녔던 내 젊은 날 인하의 한 단상이 오브랩 되어 몇자 적어 본다. 삼가 인호봉 후배의 명복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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