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유누스 이야기.
김윤규
2010.07.0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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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유누스]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는 방글라데시 ‘빈자의 대부’로 통합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방글라데시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는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를 창안해 빈민 퇴치에 앞장서 실천해온 지식인이다.
방글라데시 태생으로 미국 밴더빌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1972년 치타공 대학 교수에 임용된 유누스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교수였다.
그러나 74년 방글라데시 대홍수로 10만명이 굶어죽는 거대한 기근에 맞닥뜨리고
엄청난 충격에 빠진다.
그는 삶과 유리된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르치는 이론들이 극단적인 빈곤에 빠진 사람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그는 다 쓰러져가는 움막 앞에서 대나무 의자를 만드는 여인을 만났다.
여인이 하루에 버는 돈은 단돈 2페니였다.
그나마 빚쟁이들에게 다 뺏기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이 여인은 채무자가 아니라 노예나 다름없었다.
즉 바구니를 만드는 생업에 종사하는 극빈층들이 재료를 살 돈이 없어
고리대금업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목격한다.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내는 원금과 이자 때문에 극빈층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봤자 늘 똑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다음 날, 그는 여인과 비슷한 상황에 빠진 사람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76년 그는 마을에서 제일 빚이 많은 사람 42명을 골라 빚과 원금에 해당하는
27달러를 '여유가 되면 갚으라'며 빌려준다.
그러나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담보 없이 신용 하나만으로 소액의 돈(건당 150달러 미만)을
빌려주는 소액 대출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인구의 5%에 이르는 6백61만명의 운명을바꾼 그라민은행을
설립한다 .
‘극빈자들의 동반자’를 목표로 설립된 이 은행은 저임금과 실업,자연재해로
고통받는 방글라데시 빈민들에게 담보와 보증이라는 은행의 높은 문턱을 없앴다.
농민과 어민,도시 빈민 등 방글라데시 빈곤층은 그라민 은행으로 몰려들었다.
은행은 아무런 보증 조건 없이 소액 대출을 해주고 이들이 스스로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특히 그는 경제활동을 원하는 주부들에게 전폭적인 대출을 해줘 여권 신장에도
크게 기여했다.
즉 이슬람국가라 여성 대출이 어려운 상황임을 깨닫고 여성을 대출의 주체로
설정했다. 이로써 남성의 부속물로 취급됐던 여성이 가족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가난에다 가사노동에 찌든 빈곤층 여성들은 지금도 그라민 은행의 주요 고객이다.
은행을 통해 돈을 대출받은 방글라데시인은 현재 660만여명.이중 97%가 여성이다.
똑같이 가난한 가정이라도 여성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남성에게 빌려주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극빈층 가정이 생존을 위해 택하는 한 가지 전략은 아이들을 생계에 동원하는
것이었다. 집안의 아이들은 한 명씩 차례로 허드렛일꾼으로 나가서 일을 하고
밥을 얻어 왔다. 예닐곱 살 어린이도 노예나 다름없는 일을 해야 했다.
이런 가정의 엄마들이 필요한 돈을 빌리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일 하러
나간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사실 가난한 가정의 주부들은 매우 뛰어난
관리자들이었다. 극도로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1979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이 그의 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에 동참했다.
1983년 세워진 이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갚을 리 만무하다는 우려가
무색하게 상환율 98%라는 기적을 이룩해냈다.
1993년 흑자로 돌아선 뒤 외부 자금 지원 없이 대출자들의 저축과 이자만으로
운영하고 있다. 2006년 6월 기준 방글라데시 전역에 2,185개 지점에서
1만8천1백51명의 직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출금은 전액 예금으로 조달하고 있고, 예금의 65%는 과거 그라민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넣은 것이다. 결국 소액 대출을 통해
가난을 탈출한 사람들의 돈이 다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돈으로 순환되고 있다.
유누스 박사와 그라민 은행의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는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카메룬 등 저개발국은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37개국
9200만명이나 이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
유엔은 유누스 박사의 활동을 기려 2005년을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해’로 정하기도 했다.
유엔은 현재 전세계 극빈층을 약 10억명으로 파악하고 2015년까지 이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빈곤타파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소액 대출을 경제적 자산이 아니라 인간적 자산을 일깨우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가진 꿈을 일깨움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존중의 마음을 갖도록 만들고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유누스는 대출자들의 주1회 정기모임을 의무화해 인간다운 삶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풍토병 예방법, 깨끗한 물 마시는 법 등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교육을 실시했다. 이 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쓸 줄 몰랐던 대출자들이
글을 배우고 사회에 눈을 떴다.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빈곤이란 게으름과 무능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는 사회구조에 기인한다"는
그의 주장이 다시 한번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인간이 달에까지 가는 세상에
어째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무하마드 유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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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방송인데
우연히 다시 보게 되고 또 감동받아 이렇게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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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일님의 댓글
이진영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