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성국동문의 천국환송예배를 마치고
장용석
2009.12.2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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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지난 12월 22일, 이성국동문의 천국환송예배를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형이 섬기던 타코마제일침례교회에서 있었던 환송예배에는 분주한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200여명이 넘는 많은 조객이 참석해 형을 추모하며 형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했습니다.
특히 두 따님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전통적인 장례예배에 형의 스타일을 담은
연출이 돋 보이는 아름다운 예배였습니다. 모든 순서의 마지막에 형이 미리 조객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영상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모두 기쁘고 즐겁게 살자며 함께 웃자고 권유하면서 큰소리로 웃으시는 형의 모습에
참석한 분들은 잊지 못할 메세지를 받았습니다.
참석하셨던 동문들께서도 이제껏 경험한 어느 장례예베보다 아름다웠다며
감동된 마음을 나눴습니다.
참석해 주신 동문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조화를 보내 주신 뉴욕동문회 동문님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그 동안 함께 아파하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재미인하동문
가족 분들께 감사드리며 소식을 전합니다.
(다른 동문분들도 조화 보내시길 원하셨으나 유족의 요청에 따라 사양함에 따라 미리
도착한 뉴욕동문회의 조화만이 유일한 조화였습니다. 다른 지부의 양해를 구합니다.)
*사진설명 : 왼쪽 형의 사진 쪽에서부터
Mrs.Lee, 큰딸 승화, 둘째 딸 지윤, 막내아들 진욱, 그리고 이성국동문의 형님
댓글목록 4
장용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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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성국성도는 휴전 이듬 해인 1954년 5월 2일 충북제천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첫돌을 맞기 전에 서울로 이주하여 이후 노량진 초등학교, 성남 중고등학교를 거쳐 73년도에 인하대학교 금속공학에 진학하였습니다. 해군에서 군복무를 마친 78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졸업과 동시에 입사한 첫번째 직장 대한조선공사에서 근무하면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셨습니다. <br />
대학원을 마친 후 대한민국 중소기업 진흥공단 후원으로 약 1년반 가량 독일에서 유학을 하셨습니다. 귀국 후 1년 후인 1985년 3월, 이현숙자매님과 결혼하였고 이후 승화, 지윤, 그리고 진욱 삼남매를 두시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한국에서 중견기업인 삼칠사의 대표이사로 경영 인의 길을 걸으셨던 이성국성도님은 1999년 2월 도미하셨습니다. 도미 후 라디오한국에서 광고국장으로, 워싱턴주 최초의 전문 월간지 스몰비지니스를 창간하여 발행인으로, 또 부동산 중개인으로 활동하셨으며 지난 해 일본의 유명 문구회사인 이토야의 미국법인 개발담당이사로 발탁되어 캘리포니아에서 일하시던 중 간암판정을 받고 7개월간 투병하시다가 지난 12월 19일 0시 40분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br />
최강일님의 댓글
남은 자제분들이 아주 어리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스럽습니다. <br />
시애틀 동문회 수고 많으셨습니다.
방현수님의 댓글
장용석님의 댓글
저는 형이 동문 선배인 줄 모른 채 9년전 같은 직장(라디오한국)에서 처음 만나 약 1년여를 함께 일했습니다.<br />
그 이후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해왔지만 동문회를 통해서 이제까지 호형호제하며 지냈습니다. <br />
형에게 받은 사랑을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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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이른 아침, 형수로부터 전화로 형의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더 이상 배고파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흘 전인 화요일에 형을 찾아 갔을 때 음식을 못드신지 이미 한달이 넘었다는 형의 야윈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생명이 다 해가는 것을 스스로 인식한 채 그 순간을 기다린다는 것이 제 생각에는 참으로 힘겹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br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br />
이성국형의 믿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성경구절입니다. 건강하셨을 때도 형은 언제나 밝고 기쁘게 살았습니다. 형의 익살스런 제스쳐와 큰 웃음소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그런 형이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간암 말기란다. 의사가 나더러 한달 정도밖에 못 산단다’ 이러시며 기가 막혀 하셨습니다. 기막혀 하셨던 것도 잠시, 믿겨지지 않던 일이 현실임을 알게 되었을 때 형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으셨고 감사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매일 매일 기도하며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져가는 과정 속에서 그 전보다 더 기쁘고 더 감사한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느 날 댁에 갔더니 가족 수대로 곰인형이 있었습니다. 곰인형의 한 쪽 끝을 누리면 소리가 나는 것이었는데 형이 큰 소리로 웃으며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날까’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언제 세상을 떠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웃으며 그런 말을 가족들에게 남길 수 있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br />
저는 그 의사의 진단이 맞았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당시 형의 상태로는 고작 한달 정도밖에는 더 살수 없었지만 형이였기 때문에 그 일곱배를 더 사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칠개월동안 형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고 가족들을 준비시키셨다고 믿습니다. <br />
스몰비지니스라는 월간지를 만들 때 형은 실핏줄이 터져 눈이 빨갛게 되도록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알아 주든 그렇지 않든 형은 언제나 걸작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한 형은 정확한 경영분석 없이 부동산의 가치가 ‘매상의 몇배’ 로 매겨지는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우리 동문 가운데도 형에게 비지니스 구매를 부탁했다가 그가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물건을 형이 극구 말리는 바람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분이 계십니다. 그 동문은 지금 형의 판단에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말리는 형은 부동산으로 성공할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백혈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도와 자신의 일처럼 골수기증운동에 힘쓰는 형을 보면서 이웃에 대한 그의 사랑에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 인하대는 신학대학도 아닌데 동문회 모임때마다 기타를 들고 나와 찬양을 인도하는 형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순수한 하나님 사랑에 여러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말하는 것은 고사하고 눈 뜰 기력도 없었던 지난 주 목요일, 생명이 다 꺼져갈 때 쯤 그 동안 중보했던 사랑하는 형제 앞에서 큰소리로 ‘아멘, 아멘, 아멘’을 외치며 손뼉을 쳤다는 소릴 듣고 그가 실천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크기를 느끼며 감동을 받습니다.<br />
형의 사랑, 형의 믿음, 형의 열정과 실력, 그리고 형의 넉넉한 여유와 큰 웃음 소리를 그리워 합니다. 야위고 지친 모습이 아니라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형에게 그 동안 베풀어 주신 사랑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br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