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잃는 다는것
박명근
2008.11.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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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최성국 동문의 죽음에 관련된 한 기자분의 블로그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며칠 전 무척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겐 무척 생소한 ‘금융 부티크’인 새빛에셋의 최성국 회장이 목을 매 자살을 했습니다.
금융 부티크(boutique)는 미등록 투자자문사, 즉 사설 투자사라고 하네요.
부티크하면 전 숙녀복 매장이 떠오르는데…
프랑스어로 상점을 뜻하는 부티크는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금융 부티크는 특정 개인을 위해 투자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곳입니다.
처음부터 고객과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계약을 맺는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제도권 내의 각종 규제에서 자유롭다보니 본인의 실력만 뒷받침되면
제도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2000년 대학 동문 10여 명에게 67억 원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는 최성국 회장도
선물·옵션거래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2001년 9·11 테러 당일 1시간 만에 100%의 수익률을 올리고, 4년간 연평균 300%의
실적을 냈다니 투자수완이 보통이 아니었나 봅니다.
금융 부티크는 1998년 IMF 외환위기로 금융당국의 통제가 느슨해지고
벤처 붐으로 시중에 많은 돈이 돌면서 급격하게 번창했습니다.
그러나 고수익의 다른 말은 고위험입니다.
결국 IMF를 극복한 최 회장도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는 목숨을 끊기 앞서 호텔 객실에 30여 장의 유서를 남겼다고 합니다.
유서에는 투자자들의 이름이 일일이 거명돼 있었답니다.
“투자자들에게 원금이라도 건져주려고 애썼다. 죽음으로써 빚을 갚겠다.”
최 회장의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선 생전에 쓴 ‘증권일기’가 발견됐습니다.
올해 5월 2일자에는 ‘죽기 아니면 살기. 최성국. 正石’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정석(正石)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定石(정석)을 쓰려했던 것 같습니다.
定石은 바둑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공격과 수비의 최선책입니다.
편법과 계책이 난무하는 사회에 언제나 통하는 정석이 있다면 그건 삶의 위안일 겁니다.
하지만 정석을 고민했던 최 회장은 결국 욕망의 끝없는 계책에 무너진 듯 보입니다.
그는 모교인 인하대와 충남 홍성의 초등학교, 119 유자녀 등에게
많은 후원을 했다고 합니다.
이웃에게 희망을 선물해온 그가 왜 정작 자신에겐 용기를 선물하지 못했을까요?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신한금융지주회사의 라응찬 회장이
조만간 책을 출간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책에는 신한금융그룹을 창업한 이희건 명예회장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라 회장에게 큰 깨달음을 준 50구절을 모아 ‘오십훈(五十訓)’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네요.
좋은 얘기가 많아 몇 가지 추려봅니다.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 잃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을 끝까지 지키는 냉정함, 버려야 할 것은 단호히 버리는 용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지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더욱 연마해 사람들 기대에 당당히
부응하도록 하라.
취해도 좋고 취하지 않아도 좋은 경우는 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취하면 청렴을 해친다.
주어도 좋고 주지 않아도 좋은 경우는 주지 않는 것이 좋다. 주면 은혜를 상한다.
바라던 대로 뜻을 이루었더라도 담담한 마음을 가지고,
일이 기대에 어긋났더라도 태연한 자세를 취하라.
나는 조직의 외부에 머무르는 관찰자가 아니라 관여자가 되어야 한다.
조직은 곧 나이며, 모든 것은 관여자인 내 마음의 반영이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언젠가는 조직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남겨 놓은 에너지는 영원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영원한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남겨 두고 가느냐에 있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전의 두 배의 속도로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건강은 최대의 부(富), 소욕(少慾·적은 욕심)은 최상의 쾌락,
만족은 최고의 복록(福祿·복되고 영화로운 삶)이다.
http://www.journalog.net/jmtruth/5955
※이 글은 결코 고인을 책망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닙니다. 경제위기와 용기는 반비례하기에
지금 또다시 용기를 잃고 있을 우리의 이웃을 위한 ‘격려 글’ 정도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며칠 전 무척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겐 무척 생소한 ‘금융 부티크’인 새빛에셋의 최성국 회장이 목을 매 자살을 했습니다.
금융 부티크(boutique)는 미등록 투자자문사, 즉 사설 투자사라고 하네요.
부티크하면 전 숙녀복 매장이 떠오르는데…
프랑스어로 상점을 뜻하는 부티크는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금융 부티크는 특정 개인을 위해 투자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곳입니다.
처음부터 고객과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계약을 맺는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제도권 내의 각종 규제에서 자유롭다보니 본인의 실력만 뒷받침되면
제도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2000년 대학 동문 10여 명에게 67억 원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는 최성국 회장도
선물·옵션거래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2001년 9·11 테러 당일 1시간 만에 100%의 수익률을 올리고, 4년간 연평균 300%의
실적을 냈다니 투자수완이 보통이 아니었나 봅니다.
금융 부티크는 1998년 IMF 외환위기로 금융당국의 통제가 느슨해지고
벤처 붐으로 시중에 많은 돈이 돌면서 급격하게 번창했습니다.
그러나 고수익의 다른 말은 고위험입니다.
결국 IMF를 극복한 최 회장도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는 목숨을 끊기 앞서 호텔 객실에 30여 장의 유서를 남겼다고 합니다.
유서에는 투자자들의 이름이 일일이 거명돼 있었답니다.
“투자자들에게 원금이라도 건져주려고 애썼다. 죽음으로써 빚을 갚겠다.”
최 회장의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선 생전에 쓴 ‘증권일기’가 발견됐습니다.
올해 5월 2일자에는 ‘죽기 아니면 살기. 최성국. 正石’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정석(正石)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定石(정석)을 쓰려했던 것 같습니다.
定石은 바둑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공격과 수비의 최선책입니다.
편법과 계책이 난무하는 사회에 언제나 통하는 정석이 있다면 그건 삶의 위안일 겁니다.
하지만 정석을 고민했던 최 회장은 결국 욕망의 끝없는 계책에 무너진 듯 보입니다.
그는 모교인 인하대와 충남 홍성의 초등학교, 119 유자녀 등에게
많은 후원을 했다고 합니다.
이웃에게 희망을 선물해온 그가 왜 정작 자신에겐 용기를 선물하지 못했을까요?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신한금융지주회사의 라응찬 회장이
조만간 책을 출간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책에는 신한금융그룹을 창업한 이희건 명예회장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라 회장에게 큰 깨달음을 준 50구절을 모아 ‘오십훈(五十訓)’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네요.
좋은 얘기가 많아 몇 가지 추려봅니다.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 잃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을 끝까지 지키는 냉정함, 버려야 할 것은 단호히 버리는 용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지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더욱 연마해 사람들 기대에 당당히
부응하도록 하라.
취해도 좋고 취하지 않아도 좋은 경우는 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취하면 청렴을 해친다.
주어도 좋고 주지 않아도 좋은 경우는 주지 않는 것이 좋다. 주면 은혜를 상한다.
바라던 대로 뜻을 이루었더라도 담담한 마음을 가지고,
일이 기대에 어긋났더라도 태연한 자세를 취하라.
나는 조직의 외부에 머무르는 관찰자가 아니라 관여자가 되어야 한다.
조직은 곧 나이며, 모든 것은 관여자인 내 마음의 반영이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언젠가는 조직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남겨 놓은 에너지는 영원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영원한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남겨 두고 가느냐에 있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전의 두 배의 속도로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건강은 최대의 부(富), 소욕(少慾·적은 욕심)은 최상의 쾌락,
만족은 최고의 복록(福祿·복되고 영화로운 삶)이다.
http://www.journalog.net/jmtruth/5955
※이 글은 결코 고인을 책망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닙니다. 경제위기와 용기는 반비례하기에
지금 또다시 용기를 잃고 있을 우리의 이웃을 위한 ‘격려 글’ 정도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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