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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자유게시판

<감동실화> 다시 보는 유언장 (최종회)

김시우
2007.03.28 11:05 2,123 6
  • - 첨부파일 : 시애틀_야경.jpg (210.4K) - 다운로드

본문



“ 어디 아픈데는 없고?...”

“ 예, 저는 건강하게 잘 있어요”

“ 하긴... 넌 아플 시간도 없을 게다. 여기 있을 때에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했으니까, 근데 미국이 그렇게 좋으냐?... 막내 통해서 네 소식 듣고는  있다만… 이제서야 연락을 하고… .

" ...죄송해요..."

"...... 내가 이제 늙어 이 빌딩 관리 못하겠다. 5층에 세들었던 고시학원도 장사가 안되어 원장이 밀린 월세 대신 책상 팔어서 쓰라고 하고  문 닫았어. 11층 스카이 라운지는 소방서에서 이런 저런 방화시설 추가하지 않으면 임대를 못하게 해서  2년째 비어있다. 이휴~ 할 일이 많아. 5년전  부터 관리실에서 근무하던 오서방, 하도 술을 먹어서인지 얼마전 간경화로 죽었다.”

“ 네? ”

“ 거 있잖아, 늬 사촌 여동생 남편… 너랑 친했잖아, 평소에 걔가 네 얘기 많이 했다...네가 있으면 좋을텐데…”

“ 누나가 있잖아요, 그리고 막내도 공부마치면 돌아갈 거고... 그 사이에 사람 몇 써요.”

“ 큰 애는 여기에 관심이 없어... 그리고 걔는 복지원에서 아주 살아, 장애인들 손발 닦고, 밑까지 닦아 주며... 지 몸도 션찮은데… 나도 얼굴 본지 꽤 됐어. 그리고 막내는 목사가 될 놈인데… 그거 되겠어? 사업 마인드와 경험이 없잖아.”

“ 아버지는 지금도 마인드 찾으세요? 좀 융통성있게 사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렸건만…”

그리고 목까지 기어나왔다 들어가는 그 무엇이 있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나는 끝까지 작은 엄마의 안부는 묻지 않았다. 화병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피눈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버지에게 용서 안되는 부분이다.  

“……몇 년 전부터 건설회사에서 아파트 짓겠다며 팔라고 조르던 이천땅, 우리 선산으로 남겨놓고 싶어 그냥 놀리고 있는데, 놀리면 뭐하나 싶어 작년에 소일 삼아 여기 저기 개간하여 상추며 쑥갓하며 돌미나리, 고추, 가지를 심었더니 얼마나 싱싱하게 잘 크는지 몰라.”

“......그래요?...”

“ 올 봄에 그거 같이 따먹으면 좋겠다… 아, 아니 네가 원하면 직접 아파트 사업해. 네가 여기 있을 때 했던 거니까… ”

“ 아부지이…”

“ 그, 그래 얘기해라”

“ 그거 아세요?  형이 아직도 벽제 납골당에 있어요, 그날 그것을 들고 나오다가 이름모를  하천에 뿌리려고 했는데… 그, 그렇게 허망하게 보낼 수가 없었어요. 형, 아버지 손길만 기다리고 있을꺼예요, 자기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아버지를 말이죠. 이번 기회에 형과 화해하세요.”

“ ………”

“ 형 분골을 역시 아버지만 기다리다 가신 어머니 묘에 뿌려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구천을 떠돌고 계신  엄마와 형, 이제라도 편히 잠들게 말이죠.”

“ ………”

“ 아버지?…듣고 계세요? ”

“ 그, 그래… 그, 그렇게 하마. 이제 아버지 용서하는 거냐? 그러면 과거 다 잊고 돌아와라, 더 이상 이 애비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마라 흐흑…”

정치 실세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부정축재자들을 줄줄이 엮어 정치의 뒤안 길로 내 보내고, 당신도  정치보복을 당하여  어두웠던 정치판의 한  장면을 장식했던 아버지, 윗 선의 압력도, 뇌물도 먹히지 않아 날으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집권 실세들도  아버지 앞에서는 벌벌기었다는 그 꼬장 꼬장한 카리스마는 다 어디로 갔는지......순간, 옛날의 아버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이 스쳤다. 그게 그렇게 부담스러웠는데… .

“ 아부지이~”

“ 어, 그래,  마, 말해.”

“ 아버지 지금 당장은… 그게 좀…”

“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냐?”

“ ……저 결혼했어요....... 아버지, 며느리 얼굴도 못 봤죠? ”

터지는 울음에 손으로 입을 막아 봉했다. 아내에게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숨기고 가족 얘기가 나올 때 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하고 지내온 세월이 있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메이는 목이 따갑다.

눈을 감고 입을 꽉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며 ‘잘했다, 는 표정으로 등을 어루만지는 천사의 손길이 간지럽다. 아내였다.
아내의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와 통화하는 아내의  얼굴이  커튼을 걷어내어 들어오는 햇살을 받는 것 마냥 환하다.

사랑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오늘 사랑한다 말하고 내일 또 말해도 갈증이 나는 법이다. 가족, 친구, 동문, 이웃,
가끔 스치어 얼굴만 아는 체육관 사람들, 바쁜 시간에 사무실에 찾아 들어와 길 물어보거나 화장실 좀 쓰자고 하는 사람… 만인을 사랑해야겠다.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미워할 시간은 더 더욱 없다. 이 마음 변하지 않고 영원하였으면 좋겠다.


댓글목록 6

장용석님의 댓글

장용석 2007.03.30 23:21
  김동문, 오래간만입니다. 건강은 좀 어떠신지? 지난 번 연주회 때 옆에서 보니 목에 수술자국이 그대로던데...<br />
바쁘다는 핑계로 인하옥 방문을 뜨문뜨문했습니다. 잠깐 방문했다가도 간단한 글들만 보고 거기에 아주 짧은 댓글만 남기고 사라지곤 <br />
했었는데, 오늘은 모처럼 '감동실화'를 찬찬히 읽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마지막회네요? 늘 뭔 생각이 그리 많은가 했더니만...<br />
아무튼 그 동안 건강도 좋지 않았는데, 곁에 있는 동기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입니다. <br />
조만간 한번 보자구요.

김시우님의 댓글

김시우 2007.03.30 16:34
  7년 동안 가까히 지낸 교우가 있습니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br />
어느날 그가 자기와 사업을 같이 해보겠냐고 했을 때,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 보니, <br />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br />
<br />
그저 교회일과 순모임, 가끔 별도로 만나 같은 취미를 즐긴 것 외에는 <br />
서로가 상대방의 근본과 내면세계를 전혀 알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br />
우리 모두가 만남과 대화의 깊이및 각도를 다시 한 번 조정해 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김종삼님의 댓글

김종삼 2007.03.29 16:29
  어제 성당에가서 사순절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마음속의 잘못을 주님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비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김시우 선배님도 마음속에 묻어둔 이야기, 남에게 하기 쉽지않은 이야기를 털어놓으셔서 아마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을겁니다. 저희가 어디에 가서 이런 가슴속의 얘기를 주고 받겠습니까? 저도 얼마전에 코수술하느라 전신 마취를 했는데, 작은 수술임에도 수술대에 누우니 유언을 남기지 않은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박명근님의 댓글

박명근 2007.03.28 19:55
  정말 가슴저린 내용을 읽고 있습니다<br />
이게 우리 김동문의 과거였습니까?<br />
그래 이제 마음의 문을 여셨으니 좀 편하게 살게 되리라 믿습니다<br />
미워하지말고 살아야지요<br />
그런데 때로는 울컥해 대니 잘나가도<br />

김시우님의 댓글

김시우 2007.03.28 11:48
  얼마전 암으로 투병중인 지인이 스스로 만든 가족 영상물을 보고 그런 재주가 없는 저는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유한한 삶... 유언장을 적어 내려가면 저 밑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가족에 대한 사랑이 봇물처럼 밀려 올라옵니다. 그리고 2배의 값진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br />
<추억여행>을 지나 이 수필을 탈고할 때까지 끝까지 따라오며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동문 여러분 화이팅!

하태돈님의 댓글

하태돈 2007.03.28 13:29
  김시우씨,<br />
작년쯤인가 게시판에 올린 글을 다시 올리면서 <br />
김시우씨의 건투를 빕니다.<br />
<br />
<br />
<br />
<아주 특별한 날><br />
몇 일전 출근 길에 뉴스를 들으니 9/11 사태와 관련한<br />
유일한 생존자인Moussaoui가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br />
감옥에서 첫 날을 보내던 날,<br />
‘Today is the first day Moussaoui to spend the rest of his life in prison’<br />
하고 앵커가 얘기를 한다.<br />
그렇다. 비단 살인범으로 판결을 받고 평생을 감옥에서 <br />
보내야 하는 범죄자뿐만 아니고,<br />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br />
오늘은 남아있는 내 생의 첫날인 <br />
아주 특별한 날인 것이다.<br />
‘남은 내 생애의 첫 날<br />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my life’<br />
오늘은 살아온 날의 마지막이 아니고<br />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의 첫날이기에<br />
이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br />
<br />
일전에 읽었던 다음 두 글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내 삶을 <br />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br />
생각해 본다.<br />
<br />
 <br />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br />
<br />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br />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br />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br />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br />
<br />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br />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br />
<br />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br />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br />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br />
<br />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br />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br />
(구상, ‘오늘’)<br />
<br />
<br />
신은 늘 쾌활하며 낙천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br />
운명에 거역하지 않고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다가 <br />
활짝 웃으며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사람을 <br />
사랑하는 것 같다<br />
(제임스 해리엇,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 중에서)<br />
<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