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인하 동문회의 역사는 30년 ? 24년 ?
이중우
2007.02.21 09:35
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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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역사란 언제나 기록하는 자들 편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기에 옛날 사관들에게
엄격히 요구되는 것은 최대한의 객관적 서술이었읍니다.
최근 저희 동문회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해와 혼선이 있기에, 1976년 12월 11일
"재미 인하 공과 대학 동문회 발기 대회"에 직접 참석하고, 전후 사정을 아는 본인의 입장에서,
우리 동문회의 발자취를 잠시 언급함으로서 동문 선후배분들의 이해와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재미 인하 공과 대학 동문회 동부지부 창립과정---
1976년 12월 11일 신문(중앙일보) 광고를 보고 참석을 하니, 이미 5분의 선배님
들께서 이미 와 계셨음.(알고 보니 최상용 선배님이 신문에 사비로 공고했음)
일 시; 1976년 12월 11일 오후 7시
장 소; 서울 하우수 (Mahattan 소재)
참석 인원; 허련(56 전기),김광성(61 기계),최상룡(61 기계),이무성(61 화공)
장계인(62 기계),홍수철(63 기계),박용관(65 기계),이중우(64 화공)
발기및 정기 총회 ( 재미 인하 공과 대학 동문회 동부지부 1회 )
회장; 허 련, 부회장; 김광성, 총무; 박용관
임기; 2년 , 회비; $ 60/yr.
제 2회 재미 인하 공과 대학 동문회 동부지부 총회
일 시; 1978년 12월 16일 오후 8시
장 소; 서울 하우수
참석인원; 김광성,이무성,장계인,박용관,이중우.
전회장단 연임
허련 회장님은 한인회 부회장으로 바쁘신 관계로, 부회장인 김광성 부회장에게
업무를 일임함.
제 3회 재미 인하 공과 대학 동부지부 총회
장 소; 김광성 부회장댁
회장단; 회장 & 부회장 연임, 총무; 이중우
참석 인원; 김광성,이무성,장계인,안정환(63 금속),이중우.
상기 까지가 본 인하 공과대학 동문회 활동 상황 이었던중
1982년 12월초에 "재미 인하 대학교 동문 발기대회" 신문 공고를 접하고,낯이 익은
조병원 동문과 전화상으로,그동안의 안부와 함께 이곳에 인하 공과 대학 동문회의
존재 알림에, 일단 같이 모이자하여,참석함을 알렸고,최상룡 선배님과 제가 설득을
했으나 당시 김광성 부회장께서는 불쾌감을 내 세우면서, 1983년의 발기및 총회와
여름 야유회도 불참함.
1984년 같은 인하로 모여야 한다는데 동의 하신 김광성 선배님이 같이 참석 하시고,
당시(1983년) 총무 조병원 동문의 추천으로,1984년도 회장직을 수행 하였음.
이제 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동부지부의 역사가 30년이냐, 24년이냐 라는 문제가
대두 됩니다. 저는 똑 같은 상황이 많은 미주내 타 지부에도 상존 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재미 동부지부의 경우는 엄연히 인하 공과대학 동문회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1983년에 재미 인하대학교동문회라는 깃발 아래 하나로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역사가 부정되어서는 아니 되리라 믿읍니다.
인하대학교는 인하공과대학이 있었기에 태동 되었읍니다. 그리고 한국의 총동창회도 마찬가지 이리라 봅니다
그리고 1976년부터 신문에 공고하고 규모는 작지만 모여왔던 우리들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한 동문 선,후배 동문 여러분의 토론과 앞으로 재미 인하 대학교
동문회의 역사를 기록 하는데 정확히 이해하고, 동의를 구하고 지나가야 할
시점이 된것 같기에 동문 선,후배 여러분들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구합니다.
이 글이 누구의 노고가 과소 평가 되자는것도, 누가 더 잘 했다는 공을 내 세우는
것이 되어서는 더더욱 아니되리라 생각 합니다.
단지 이번 행사에 1983년도에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동문분들에 대한 배려가 미흡했다면
이는 차기 혹은 2013년도에 그 공로를 인정하는 행사를 가지는것을 고려해야 될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들의 모임 보다 더욱 확대 발전 시킨 분(1983년 발기 추진위원)들의 공도 분명히
우리 동문분들은 잊지 말아야 할것 입니다.
동문 여러분들의 의견을 기다리겠읍니다.
엄격히 요구되는 것은 최대한의 객관적 서술이었읍니다.
최근 저희 동문회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해와 혼선이 있기에, 1976년 12월 11일
"재미 인하 공과 대학 동문회 발기 대회"에 직접 참석하고, 전후 사정을 아는 본인의 입장에서,
우리 동문회의 발자취를 잠시 언급함으로서 동문 선후배분들의 이해와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재미 인하 공과 대학 동문회 동부지부 창립과정---
1976년 12월 11일 신문(중앙일보) 광고를 보고 참석을 하니, 이미 5분의 선배님
들께서 이미 와 계셨음.(알고 보니 최상용 선배님이 신문에 사비로 공고했음)
일 시; 1976년 12월 11일 오후 7시
장 소; 서울 하우수 (Mahattan 소재)
참석 인원; 허련(56 전기),김광성(61 기계),최상룡(61 기계),이무성(61 화공)
장계인(62 기계),홍수철(63 기계),박용관(65 기계),이중우(64 화공)
발기및 정기 총회 ( 재미 인하 공과 대학 동문회 동부지부 1회 )
회장; 허 련, 부회장; 김광성, 총무; 박용관
임기; 2년 , 회비; $ 60/yr.
제 2회 재미 인하 공과 대학 동문회 동부지부 총회
일 시; 1978년 12월 16일 오후 8시
장 소; 서울 하우수
참석인원; 김광성,이무성,장계인,박용관,이중우.
전회장단 연임
허련 회장님은 한인회 부회장으로 바쁘신 관계로, 부회장인 김광성 부회장에게
업무를 일임함.
제 3회 재미 인하 공과 대학 동부지부 총회
장 소; 김광성 부회장댁
회장단; 회장 & 부회장 연임, 총무; 이중우
참석 인원; 김광성,이무성,장계인,안정환(63 금속),이중우.
상기 까지가 본 인하 공과대학 동문회 활동 상황 이었던중
1982년 12월초에 "재미 인하 대학교 동문 발기대회" 신문 공고를 접하고,낯이 익은
조병원 동문과 전화상으로,그동안의 안부와 함께 이곳에 인하 공과 대학 동문회의
존재 알림에, 일단 같이 모이자하여,참석함을 알렸고,최상룡 선배님과 제가 설득을
했으나 당시 김광성 부회장께서는 불쾌감을 내 세우면서, 1983년의 발기및 총회와
여름 야유회도 불참함.
1984년 같은 인하로 모여야 한다는데 동의 하신 김광성 선배님이 같이 참석 하시고,
당시(1983년) 총무 조병원 동문의 추천으로,1984년도 회장직을 수행 하였음.
이제 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동부지부의 역사가 30년이냐, 24년이냐 라는 문제가
대두 됩니다. 저는 똑 같은 상황이 많은 미주내 타 지부에도 상존 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재미 동부지부의 경우는 엄연히 인하 공과대학 동문회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1983년에 재미 인하대학교동문회라는 깃발 아래 하나로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역사가 부정되어서는 아니 되리라 믿읍니다.
인하대학교는 인하공과대학이 있었기에 태동 되었읍니다. 그리고 한국의 총동창회도 마찬가지 이리라 봅니다
그리고 1976년부터 신문에 공고하고 규모는 작지만 모여왔던 우리들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한 동문 선,후배 동문 여러분의 토론과 앞으로 재미 인하 대학교
동문회의 역사를 기록 하는데 정확히 이해하고, 동의를 구하고 지나가야 할
시점이 된것 같기에 동문 선,후배 여러분들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구합니다.
이 글이 누구의 노고가 과소 평가 되자는것도, 누가 더 잘 했다는 공을 내 세우는
것이 되어서는 더더욱 아니되리라 생각 합니다.
단지 이번 행사에 1983년도에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동문분들에 대한 배려가 미흡했다면
이는 차기 혹은 2013년도에 그 공로를 인정하는 행사를 가지는것을 고려해야 될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들의 모임 보다 더욱 확대 발전 시킨 분(1983년 발기 추진위원)들의 공도 분명히
우리 동문분들은 잊지 말아야 할것 입니다.
동문 여러분들의 의견을 기다리겠읍니다.
댓글목록 8
이중우님의 댓글
하시고,다시역사에 click 하시면 동문회 변천사가 나올것 입니다.<br />
<br />
전에 저 나름대로 기록 했다가, 제가 집행부를 맡으면서, 제것을 제가 적기가 .... 중단이 되었지요. 그때까지라도 참고들 하시길.
조병원님의 댓글
있네요,저 한테 전화 주섰다 는 내용,글쎄 요 ?.제 가 기역 상실증 에 걸린 것 같 네 요,생각 이 안 나네 요.<br />
그란일 이 있었 다 면 ,제 가 사과 드립니다. 아무 튼 후배 들 이 선배님 들 보다 재 발기 하나 는 비아그라 먹고 한 것 처럼 확실 히 했네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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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영환님의 댓글
오늘 이 중우동문과 대화 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1983년도 시작을 하면서,예를 들면, 일시,장소,참석 인원 수,대화 내용, 의견들의 모든것을 기록을 하고 사진을 찍어서 Attach하여서 Binding까지 하여서 한권의 책처럼 만들어서 인계를 하여 드렸는데.... 아무런것도 가지고 계신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중요한 기록이었는데 말입니다.<br />
왜 분실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안타까운 마음 입니다.
곽 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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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후에 김 광성선배님이 처음 참석을 하신 야유회에서 한국에서 부터 친하게 지낸던 몇 사람들이 우리집에서 만나고 하였다고만 하셨습니다.
김종삼님의 댓글
다만, 초기에 소수의 인원으로 끌어 오던 동문회를 확대 발전시킨 83년도의 활동상을 조금 더 조명해 보는것도 또 다른 역사의 기록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번 모임에서 언급없이 지나간것에 대해서도 죄송스러운것 같습니다. 그러나, 2013년에 또 다른 기념회를 한다는 것은 무리인것 같고, 올해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그 당시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거나 그 당시에 활동 했던 선배님들께서 일기나 콩트형식으로 일화들을 남겨 주시면 나중에 저희가 책자로 만들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제가 듣기에도 동문회에 다녀오다가 사고난 얘기도 있고, 다른 재미있는 얘기도 있을것 같습니다. 83년도에 모임을 활성화 시킨 선배님들에게 무엇인가를 해드리는것에 한표 던집니다.
박명근님의 댓글
재미인하공과대학 동문회 동부지부가 있었다는 것은 당연히 이를 계승 발전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것이 도리라 생각됩니다.<br />
초창기의 열악한 환경속에서 비록 적은 모임이지만 출발 했다는 점에서 이를 높이 인정하고 싶습니다<br />
그러나 83년도에 결성된 분들을 총해 본 동문회가 제대로 자리 잡았다는 그 공 또한 저희 후배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하태돈님의 댓글
당시야 신문이라고 해야 변변치도 못했고,<br />
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인터넷이 어디 있었나요.<br />
있는지 모르고 만든 분들도 학교, 동문사랑이요,<br />
먼저 시작한 동문님들도 똑 같은 마음이지요.<br />
그저 그 따듯한 마음을 잘 이어가면 되리라 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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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
김진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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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동문회을 하나로 통합하였다면, 먼저 시작한 것이 시작 년도가 될것 같군요. 그러나 1983년 기존의 동문회를 모르고 시작하신 동문님들의 입장에서는 좀 섭섭하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