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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자유게시판

지면서 이기는 전쟁

김시우
2005.11.06 11:13 62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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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핏덩이를 쥐고 태어난 순간부터 말위에서 죽는 마지막까지 칭기스칸의 역정은 드라마 중의 드라마이다. 그 압권 중 하나는 애벌레였던 테무진이 나비가 되어 날아가게 된 자모카와의 이별 전쟁이다.


자모카는 테무진과 어린시절부터 안다(의형제 혹은 평생 친구)였고, 테무진의 아내 버르테가 납치되었을 때 웅칸과 함께 최선봉에 서서 그녀를 구출했다. 아내가 구출된 후 테무진은 자모카의 군영에서 공동유목을 했다. 유목민들에게 함께 유목한다는것은 대단한 결속을 의미한다. 우리로 치자면 같은 논에서 두 가족이 농사를 짓는 일이다. 힘이 없었던 테무진은 자모카의 테두리 안에 있었기에 약탈과 전투가 비일비재한 초원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테무진이 필사적으로 힘을 기르는 것을 알아챈 자모카는 어느날 결별을 선언한다. 테무진은 즉각 동의한다.


그날부터 두 세력의 동지 관계는 끝났다. 자모카로서는 배신을 당한 꼴이었다. 테무진은 이별을 위한 세레모니가 필요함을 느꼈다.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나는 패배할 것이다. 이로써 자모카에게 진 빚을 갚는다.” 여기엔 어엿한 군사세력으로 공인받으려는 계산도 깔려있었다.


테무진은 지면서 이기는 전쟁을 계획한다. 테무진은 자모카의 동생을 말도둑 누명을 씌워 살해했다. 동생이 살해된 이상 자모카는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려 13개 군단 3만 명의 군대로 공격해 들어왔다. 계획대로 칭기스칸은 고의로 패배하며 도주했다. 함정에 빠진줄 알았지만 자모카는 공격을 해야했다. 두 세력이 서로 갈라선 마당이니 이기는 전쟁을 한 측에 민심이 몰릴 것이었다.


하지만 자모카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 칭기스칸은 후퇴하면서 한 씨족(치노스 씨족)을 희생물로 남겨놓았다. 자모카는 그 씨족의 족장과 귀족 자식들을 70개의 가마솥에 넣어 끓여 죽였다. 이는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그 장면를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몽골인들, 특히 부하들부터 그의 잔인함에 치를 떨며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자모카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붙잡혀 칭기스칸에게 끌려가 처형됐다.


이기기 위해 지는 것, 이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걸 할 줄 아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이다. 리더는 마지막 장면 즉 라스트 신만 머리속에 그리고 있으면 된다. 지휘자가 주 타겟을 잃어버리면 조직은 엄청난 동요를 일으킨다. 동네 뒷산을 오를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첩첩산중을 걸어야 한다면, 백두산처럼 겹겹의 봉우리가 있는 산을 오를 때라면 결코 주봉을 놓쳐서는 안된다. 산을 오르다보면 오르막도 있지만 내리막도 있다. 그러나 그 무수한 길은 결국 정상에 오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전쟁에 있어서, 더 나아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조직의 리더에 있어서는 성패가 선악보다 적은 가치는 아닐 것이다. 무슨 업무를 수행했을 때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거나 스스로 인정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아마추어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프로의 세계에서는 패배한 리더는 리더가 아니다. 그는 조직 전체를 책임진 사람이다. 그러니 착하지만 무능력한 리더는 태초에 생기질 말았어야 한다.


또 하나 짚고갈 것이 있다. 비지니스는 열정만 갖고 있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요즈음 들어 세간에 새로운 해석으로 떠오르는 말이 있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다. 조급함과 후진적 문화의 상징이던 이 말이 오히려 21세기에 경쟁력을 높이는 문화라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해석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빨리빨리와 속도는 다르다. 빨리빨리 문화는 속도를 높이는 동력이 아니다. 빨리빨리는 시간경영을 하지 않은채 결과부터 챙기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허둥대기만 할 뿐 제대로 일처리를 해나가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시간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된다.

(www.120rotc.co.kr 20기 김광현 선배의 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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