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n American Dreams
하태돈
2006.03.08 09:48
1,707
4
본문
지난 1월 25일, 부품 꿈을 안고 미국 땅에 첫 발을 내디딘 23주년을 맞았다. 지난 그 긴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아 왔고,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위해서, 어떤 희망을 가지고 이 땅에 이렇게 살아 가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 좋은 기회였다. 마침 중국계 이민 이세인 Helen Zia가 쓴 ‘Asian America Dreams, The Emergence of an American People’을 읽던 중 느낀 감상문으로 그 감회를 대신 하고자 한다.
I
초기 미국생활의 수년 동안은 학생이라는 신분이었으니 교포사회, 또는 아시안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애써 무관심 하려고 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는 미국 시민이 되고,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면서 축복받은 미국에 늦게나마 이민 생활을 하게 된 것을 미국 사회에, 이런 훌륭한 나라의 기초를 닦아 놓은 초기 이민자들과 그 전통을 잘 지켜 나가는 다수의 미국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자고 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훌륭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에 살면서 감사의 마음이 없다면 오히려 좀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조용히 살지만 한 명의 성실한 시민이 되자 하는 마음을 항상 간직 하려고 노력했다.
길게는 지난 한세기부터 반세기까지, 그리고 짧게는 내가 이 미국 땅에 살기 시작한 불과 사반세기부터 수녀 전 까지만 해도 우리 한국의 이민 선배 들 뿐 아니고, 나아가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 필리핀계 등 모든 아시안 이민자들이 겪었던 인종 차별로부터 시작된 그 고통들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애써 외면 하려고 했던 그런 사건들이, 그런 고통을 넘어 서려고 했던 많은 선배들이 없었다면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소수 민족으로서 감히 이렇게 어깨를 당당히 펴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비단 청교도적 정신에 기초한 초기 이민자 뿐만 아니고 차별과 학대와 고통 속에서 이러한 지위를 얻을 수 있게 한 여러 아시안 이민자 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결과에 도달 한다.
II
아시안의 이민 역사는 역시 중국인들이 선도한다. 초기 미국 개척 시대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동력을 제공 했지만, 노예를 대신 할 노동력이 1850년을 전후 한 중국의 초기 이민자 들이다. 저자는 이를 surrogate slaves라고 표현하고 있다. 유럽이민자 들에 비하여는 비록 제한된 숫자이나 대체 노동력의 필요성에 의해 다수의 중국계 이민자 들이 밀려 들어온다. 이러한 숫자상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California 주는 아예 Negros, Mongolians, 그리고 Indians는 공립학교에 입학 할 수 없다는 법이 제정 되었고, Civil War이후에 흑인에게는 시민권이 부여 되었지만 중국인에게는 시민권 자격이 없었다. 불과 1889년도 에서야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이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수년에 걸친 법정 투쟁의 결과 이다. 이러한 중국 이민자들이 겪었던 고난은 대도시의 downtown에 차지하고 있는 China Town이 이를 대변을 하고 있다. 그들이 흑인노예를 대신하여 미국 건설에 커다란 공헌을 한 것으로 어디를 가더라도 그들만의 터전이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계가 겪었던 고통은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이차대전 중에 일본계 이민자 들이 겪었던 강제수용(internment)은 아마 일본계 이민자들에겐, 유대인들이 나치 치하의 수용소만큼이나 기억하기 싫은 참혹함 이었을 것이다. 이차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한동안 침체 상태에 있던 중국계의 이민이 일본계를 대신 한다. 그리고 중국의 공산화, 한반도의 전쟁 후에는 한국의 이민 행렬이 다시 중국계를 대신 하게 된다. 그 후에는 월남전을 전후하여 boat people이라고 불리는 월남 피난민, 그리고 killing field를 피하여 탈출한 캄보디아, 라오스 계 등 남아시아 계의 이민이 주를 이루게 된다. Hmong(멍)이라 불리는 이들은 주로 미네소타를 중심으로 정착 하고 있다.
저자는 각 인종들이 겪어야 했던 사건들을 실제 사건을 들어가며, 그에 대응하여 일어난 인권 운동을 아주 구체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일본계 자동차가 미국에 본격적으로 수입이 되기 시작하면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들이 불황을 맞게 된다. 그 결과 대량 해고가 뒤따르고, 일본(덩달아 아시아계) 혐오 분위기가 팽배해 지면서 일본인과 비슷하게 생긴 아시안들은 길거리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수난을 당하게 된다.
1982년 어느 여름날 결혼을 앞두고 bachelor party를 하기 위해 미국친구들과 bar에 놀러 간 중국계 이민 이세인 Vincent Chin은 바에서 해고 자동차 노동자 부자와 시비가 붙어 결국 야구방망이에 맞아 죽게 된다. 당시 이 백인부자는 법정에서 3개월 집행유예에 소액의 벌금을 받는 아주 경미한 형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단순히 잊혀져 가는 단순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저자를 포함한 디트로이트 인근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게 된다. 증인 중에 가해자가 “....because of you motherfucker…”라는 인종 혐오 발언을 했다는 증언을 하게 되는데 에도 불구하고 중범죄자로 다뤄지지 않고 단순 사건으로 처리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디트로이트 근교의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지도층 아시안들의 모임인 American Citizens for Justice(ACJ)가 결성이 되고 아시안 최초의 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수년간의 on and off court 투쟁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1987년도에 민사 재판으로 막을 내리지만 이 사건이 그 동안 잠재의식 속에만 간직하고 있던 아시안들의 민권운동의 시발점이 되는 아주 큰 획을 긋게 된다.
이 책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이민자들이 겪었던, 기억에도 생생한 사건을 회상해볼 필요가 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은 1988년도 Brooklyn의 Bedford-Stuyvesant에서 있었던 Tropic Market 사건, 그리고 이 교훈이 체 가시기도 전인 1990년도에 발생한Brooklyn Flatbush, Church Avenue에 있는 Family Red Apple Market (Jang, Bong Jae)의 사건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저자는 이 사건이 발생 했을 때에 한국 교포사회가 보여준 무력함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Sonny Carson으로 대표되는 흑인 선동가에 대항하여 한국교포 단체가 보여준 것은, 디트로이트 ACJ가 수년에 걸쳐 이미 죽은 청년을 대신하여 투쟁하여 거둔 민권운동의 모범을 전혀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장봉재씨는 가게를 포기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한국동포라면 다 고유명사로 기억하는 Sa-i-gu. Rodney King을 구타한 백인 경찰들에 무죄 평결이 내려지면서 전혀 엉뚱하지 않게 한국인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LA 폭동(4/29/1992)을 일컬음이다. 여기에 내가 ‘전혀 엉뚱하지 않게’라는 표현을 해 놓았는가 하면, 그 발단은 분명 백인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의 폭발이지만 이미 LA 한인들이 그 화약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LA에서는 이 폭동이 일어나기 수년 전부터 한-흑간에는 수많은 갈등이 내재돼 있었다. 주로 소규모 자영업을 하는 한인들과 상점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거나 강도 짓을 하는 흑인간의 뻔한 스토리 이다. 그런데 이 흑인들은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또는 ‘계’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 정부 등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사업을 일으키고 흑인 지역에 들어와 자기들의 기반을 다 잠식 한다는, 일부 흑인 선동가 들의 루머가 그들 마음속에 잠재해 있었다.
크고 작은 수 많은 갈등 속에 1991년 3월 두순자씨가 운영하는 상점에서 어린 아이가 캔디를 사러 왔다가 두순자 여인과 시비가 붙은 가운데 두씨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한-흑간의 갈등은 폭풍전야의 최고긴장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 사건과 4-29 사이의 수개월 동안 한-흑간의 갈등이란 불이 당겨지기만을 기다리며 쌓아놓은 화약고와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로드니 킹의 판결이 그 불씨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전혀 엉뚱하지 않게 한국 사람들이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 4-29를 당하면서도 무력하게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이민 1세에 비해, 1.5세, 2세를 중심으로 이제는 한인사회의 밖에서 일어나는 정치, 사회적 현상에 적극적인 참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크게 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2세인 Angela Oh 변호사가 많은 활약을 한다(일간신문,3/7/06,에 보니 아시안아메리칸언론인협회, AAJA,에서 오변호사가 공로상을 받는다고 한다). 불행한 것은 Sa-i-gu 직후에 중국, 일본계를 비롯한 다른 아시아계로부터 변변한 지지와 동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데 그것은 한인 사회가 얼마나 고립되고 폐쇄적인 모습으로, bystanders로서 이 미국 땅에서 살아 왔는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인 사회는 분명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고, 힘을 합치면, 비록 다른 인종과라도,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책에서 거론한 각종 사건을 일일이 다 거론 할 수는 없으나 다른 이민자 들이 겪었던 사례를 간단히 몇 가지 언급 할 필요가 있다. 영화나 연극, 뮤지칼 등에서 아시안 역할을 아시안 배우들이 배역을 받지 못하고 유럽계 미국인들이 우스꽝스러운 아시안 흉내(찢어진 눈화장으로 대표됨)를 내고, 진짜 아시안 들이 전혀 배제를 당하는 것은 당연시 되었는데 영국에서 대 성공을 거두고 브로드웨이 지출을 앞두고 있던 Musical ‘Miss Saigon’의 주요 아시안 남자배역을 투쟁 끝에 결국 아시안 배우로 결정하게 되는 성과를 거둔다.
Alaska, Washington주의 통조림 공장은 주로 Filipino의 노동력으로 운영이 되었는데 백인 노동자들에 비하여 그들의 작업, 생활 환경이란 도저히 사람이 견딜 수 없는 노예와 드람이 없는 취약한 환경이었다. 결국 이들도 Alaska Cannery Workers Association(ACWA)를 결성하여 투쟁을 시작한다. 상, 하원을 오가는 오랜 투쟁 끝에 이들도 결국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뉴욕에서 택시를 타면 거의가 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인들이 운전을 하는 택시를 타게 된다. 이 들도 역시 수 없이 많은 범죄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그래서 Vincent Chin 사건 이후에 결성된 the Committee Against Anti-Asian Violence(CAAAV)라는 단체와는 별도로 택시운전사를 보호하려는 단체를 결성하게 되는데,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대충 기억을 하겠으나 1998년도에 Yellow Cap 전면 파업을 단행하게 된다. 당시 뉴욕시장은 물론 언론들도 이 파업이 전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으나, 파업에 참여한 기사 자신들도 놀랄 정도로, 일사 분란하게 단결이 되어 당시 줄리아니 시장이 백기를 들게 만든다.
그 밖에 미네소타 한 방송국의 Hmong 비하 방송에 대한 투쟁결과 사과를 받아낸 사건, 그리고 미네소타에만 10만이 넘는 한국계 고아 입양아들이 겪는 고충도 언급 되어 있다. 입양아 들이 자라나면서 뿌리를 찾게 되면서 생기는 갈등, 또한 그들이 당하는 성적 학대에 대한 문제도 집고 넘어간다. 유명감독인 Woody Allen과 Soon-Yi Previn의 에피소드에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리고 점점 늘어가는 Hapas(다른 인종과의 결혼으로 생긴 이세들, half라는 하와이 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상기에 간단히 언급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저들이 고통을 당할 때에 분연히 일어서서 투쟁을 하면서 그들의 권익, 인권을 보호 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들의 경험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III
1965년의 Immigration Act 이후에 물밀듯이 들어오는 우리 아시안 계의 이민 물결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시안들의 정치적, 사회적 파워는 아주 미약 하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말의 워싱톤 주지사로 당선던 Gary Locke 주시자, 그리고 하와이의 이노우에 상원의원, 한국계의 유창준 하원의원 등을 제외하면 극히 소수의 아시안 들이 중앙 정치 무대에 등장 했을 뿐이다. 근면성실로 대표되는 한인들의 경제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그런데 4-29를 상기 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인 안정적 삶에서 더 나아가 미 주류에서 한 축으로서의 정당한 대접을 받으려면 경제력 이외에도 중앙 정치와 공공 관직에 더 많은 아시안 들이 진출을 해야 하고, 바로 그것은 표의 힘으로 나타나야 한다. 최근 뉴저지 중부 에디슨 시에서 한인 시장이 탄생 한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바로 그런 면에서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는 한인유권자센터(소장 김동석)의 확약이 기대된다. 저자인 Helen Zia는 각 인종들이 겪어야 했던 많은 사건과 자료와 아시안들이 이민 초기부터 겪어야 했던 고통을 깨우쳐 줌과 동시에, 우리 세대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후손들이 이 미국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하는 많은 교훈을 알려준다.
지난 Tolino 동계 올림픽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미국 선수와 한국 선수가 경기를 하는데 누구를 응원 하느냐 물으니 아주 당연 하다는 듯이 미국 선수를 응원 한다고 한다. 어쩌면 예상했던 당연한 대답 이지만 저 아이들이 조금 더 커가면 자기들 Identity Crisis가 올 때쯤에는 이 책을 꼭 권 할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세대가, 그리고 그 이전에 우리 이민 선조들이 어떻게 지금의 지위를 획득 했는지 분명히 알게 하고 싶다. 우리 기성 세대가 각자 가지고 있는 꿈을 이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자녀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고, 그 자녀들은 우리 부모 세대가 걸어온 길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게 해 줄 필요가 있다. We have our dreams, Asian American Dreams.
고등학교 이상 자녀들 정도면 이 책을 충분히 소화 할 것으로 생각 된다. 자녀 들에게 꼭 필독을 권하고, 우리 어른들도 이런 분야에 관심을 좀 가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권하고 싶다.
Asian American Dreams. The Emergence of and American People, by Helen Zia, FSG 2000
하태돈 (Mar. 2006)
I
초기 미국생활의 수년 동안은 학생이라는 신분이었으니 교포사회, 또는 아시안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애써 무관심 하려고 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는 미국 시민이 되고,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면서 축복받은 미국에 늦게나마 이민 생활을 하게 된 것을 미국 사회에, 이런 훌륭한 나라의 기초를 닦아 놓은 초기 이민자들과 그 전통을 잘 지켜 나가는 다수의 미국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자고 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훌륭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에 살면서 감사의 마음이 없다면 오히려 좀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조용히 살지만 한 명의 성실한 시민이 되자 하는 마음을 항상 간직 하려고 노력했다.
길게는 지난 한세기부터 반세기까지, 그리고 짧게는 내가 이 미국 땅에 살기 시작한 불과 사반세기부터 수녀 전 까지만 해도 우리 한국의 이민 선배 들 뿐 아니고, 나아가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 필리핀계 등 모든 아시안 이민자들이 겪었던 인종 차별로부터 시작된 그 고통들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애써 외면 하려고 했던 그런 사건들이, 그런 고통을 넘어 서려고 했던 많은 선배들이 없었다면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소수 민족으로서 감히 이렇게 어깨를 당당히 펴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비단 청교도적 정신에 기초한 초기 이민자 뿐만 아니고 차별과 학대와 고통 속에서 이러한 지위를 얻을 수 있게 한 여러 아시안 이민자 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결과에 도달 한다.
II
아시안의 이민 역사는 역시 중국인들이 선도한다. 초기 미국 개척 시대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동력을 제공 했지만, 노예를 대신 할 노동력이 1850년을 전후 한 중국의 초기 이민자 들이다. 저자는 이를 surrogate slaves라고 표현하고 있다. 유럽이민자 들에 비하여는 비록 제한된 숫자이나 대체 노동력의 필요성에 의해 다수의 중국계 이민자 들이 밀려 들어온다. 이러한 숫자상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California 주는 아예 Negros, Mongolians, 그리고 Indians는 공립학교에 입학 할 수 없다는 법이 제정 되었고, Civil War이후에 흑인에게는 시민권이 부여 되었지만 중국인에게는 시민권 자격이 없었다. 불과 1889년도 에서야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이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수년에 걸친 법정 투쟁의 결과 이다. 이러한 중국 이민자들이 겪었던 고난은 대도시의 downtown에 차지하고 있는 China Town이 이를 대변을 하고 있다. 그들이 흑인노예를 대신하여 미국 건설에 커다란 공헌을 한 것으로 어디를 가더라도 그들만의 터전이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계가 겪었던 고통은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이차대전 중에 일본계 이민자 들이 겪었던 강제수용(internment)은 아마 일본계 이민자들에겐, 유대인들이 나치 치하의 수용소만큼이나 기억하기 싫은 참혹함 이었을 것이다. 이차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한동안 침체 상태에 있던 중국계의 이민이 일본계를 대신 한다. 그리고 중국의 공산화, 한반도의 전쟁 후에는 한국의 이민 행렬이 다시 중국계를 대신 하게 된다. 그 후에는 월남전을 전후하여 boat people이라고 불리는 월남 피난민, 그리고 killing field를 피하여 탈출한 캄보디아, 라오스 계 등 남아시아 계의 이민이 주를 이루게 된다. Hmong(멍)이라 불리는 이들은 주로 미네소타를 중심으로 정착 하고 있다.
저자는 각 인종들이 겪어야 했던 사건들을 실제 사건을 들어가며, 그에 대응하여 일어난 인권 운동을 아주 구체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일본계 자동차가 미국에 본격적으로 수입이 되기 시작하면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들이 불황을 맞게 된다. 그 결과 대량 해고가 뒤따르고, 일본(덩달아 아시아계) 혐오 분위기가 팽배해 지면서 일본인과 비슷하게 생긴 아시안들은 길거리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수난을 당하게 된다.
1982년 어느 여름날 결혼을 앞두고 bachelor party를 하기 위해 미국친구들과 bar에 놀러 간 중국계 이민 이세인 Vincent Chin은 바에서 해고 자동차 노동자 부자와 시비가 붙어 결국 야구방망이에 맞아 죽게 된다. 당시 이 백인부자는 법정에서 3개월 집행유예에 소액의 벌금을 받는 아주 경미한 형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단순히 잊혀져 가는 단순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저자를 포함한 디트로이트 인근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게 된다. 증인 중에 가해자가 “....because of you motherfucker…”라는 인종 혐오 발언을 했다는 증언을 하게 되는데 에도 불구하고 중범죄자로 다뤄지지 않고 단순 사건으로 처리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디트로이트 근교의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지도층 아시안들의 모임인 American Citizens for Justice(ACJ)가 결성이 되고 아시안 최초의 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수년간의 on and off court 투쟁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1987년도에 민사 재판으로 막을 내리지만 이 사건이 그 동안 잠재의식 속에만 간직하고 있던 아시안들의 민권운동의 시발점이 되는 아주 큰 획을 긋게 된다.
이 책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이민자들이 겪었던, 기억에도 생생한 사건을 회상해볼 필요가 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은 1988년도 Brooklyn의 Bedford-Stuyvesant에서 있었던 Tropic Market 사건, 그리고 이 교훈이 체 가시기도 전인 1990년도에 발생한Brooklyn Flatbush, Church Avenue에 있는 Family Red Apple Market (Jang, Bong Jae)의 사건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저자는 이 사건이 발생 했을 때에 한국 교포사회가 보여준 무력함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Sonny Carson으로 대표되는 흑인 선동가에 대항하여 한국교포 단체가 보여준 것은, 디트로이트 ACJ가 수년에 걸쳐 이미 죽은 청년을 대신하여 투쟁하여 거둔 민권운동의 모범을 전혀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장봉재씨는 가게를 포기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한국동포라면 다 고유명사로 기억하는 Sa-i-gu. Rodney King을 구타한 백인 경찰들에 무죄 평결이 내려지면서 전혀 엉뚱하지 않게 한국인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LA 폭동(4/29/1992)을 일컬음이다. 여기에 내가 ‘전혀 엉뚱하지 않게’라는 표현을 해 놓았는가 하면, 그 발단은 분명 백인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의 폭발이지만 이미 LA 한인들이 그 화약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LA에서는 이 폭동이 일어나기 수년 전부터 한-흑간에는 수많은 갈등이 내재돼 있었다. 주로 소규모 자영업을 하는 한인들과 상점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거나 강도 짓을 하는 흑인간의 뻔한 스토리 이다. 그런데 이 흑인들은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또는 ‘계’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 정부 등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사업을 일으키고 흑인 지역에 들어와 자기들의 기반을 다 잠식 한다는, 일부 흑인 선동가 들의 루머가 그들 마음속에 잠재해 있었다.
크고 작은 수 많은 갈등 속에 1991년 3월 두순자씨가 운영하는 상점에서 어린 아이가 캔디를 사러 왔다가 두순자 여인과 시비가 붙은 가운데 두씨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한-흑간의 갈등은 폭풍전야의 최고긴장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 사건과 4-29 사이의 수개월 동안 한-흑간의 갈등이란 불이 당겨지기만을 기다리며 쌓아놓은 화약고와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로드니 킹의 판결이 그 불씨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전혀 엉뚱하지 않게 한국 사람들이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 4-29를 당하면서도 무력하게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이민 1세에 비해, 1.5세, 2세를 중심으로 이제는 한인사회의 밖에서 일어나는 정치, 사회적 현상에 적극적인 참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크게 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2세인 Angela Oh 변호사가 많은 활약을 한다(일간신문,3/7/06,에 보니 아시안아메리칸언론인협회, AAJA,에서 오변호사가 공로상을 받는다고 한다). 불행한 것은 Sa-i-gu 직후에 중국, 일본계를 비롯한 다른 아시아계로부터 변변한 지지와 동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데 그것은 한인 사회가 얼마나 고립되고 폐쇄적인 모습으로, bystanders로서 이 미국 땅에서 살아 왔는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인 사회는 분명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고, 힘을 합치면, 비록 다른 인종과라도,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책에서 거론한 각종 사건을 일일이 다 거론 할 수는 없으나 다른 이민자 들이 겪었던 사례를 간단히 몇 가지 언급 할 필요가 있다. 영화나 연극, 뮤지칼 등에서 아시안 역할을 아시안 배우들이 배역을 받지 못하고 유럽계 미국인들이 우스꽝스러운 아시안 흉내(찢어진 눈화장으로 대표됨)를 내고, 진짜 아시안 들이 전혀 배제를 당하는 것은 당연시 되었는데 영국에서 대 성공을 거두고 브로드웨이 지출을 앞두고 있던 Musical ‘Miss Saigon’의 주요 아시안 남자배역을 투쟁 끝에 결국 아시안 배우로 결정하게 되는 성과를 거둔다.
Alaska, Washington주의 통조림 공장은 주로 Filipino의 노동력으로 운영이 되었는데 백인 노동자들에 비하여 그들의 작업, 생활 환경이란 도저히 사람이 견딜 수 없는 노예와 드람이 없는 취약한 환경이었다. 결국 이들도 Alaska Cannery Workers Association(ACWA)를 결성하여 투쟁을 시작한다. 상, 하원을 오가는 오랜 투쟁 끝에 이들도 결국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뉴욕에서 택시를 타면 거의가 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인들이 운전을 하는 택시를 타게 된다. 이 들도 역시 수 없이 많은 범죄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그래서 Vincent Chin 사건 이후에 결성된 the Committee Against Anti-Asian Violence(CAAAV)라는 단체와는 별도로 택시운전사를 보호하려는 단체를 결성하게 되는데,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대충 기억을 하겠으나 1998년도에 Yellow Cap 전면 파업을 단행하게 된다. 당시 뉴욕시장은 물론 언론들도 이 파업이 전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으나, 파업에 참여한 기사 자신들도 놀랄 정도로, 일사 분란하게 단결이 되어 당시 줄리아니 시장이 백기를 들게 만든다.
그 밖에 미네소타 한 방송국의 Hmong 비하 방송에 대한 투쟁결과 사과를 받아낸 사건, 그리고 미네소타에만 10만이 넘는 한국계 고아 입양아들이 겪는 고충도 언급 되어 있다. 입양아 들이 자라나면서 뿌리를 찾게 되면서 생기는 갈등, 또한 그들이 당하는 성적 학대에 대한 문제도 집고 넘어간다. 유명감독인 Woody Allen과 Soon-Yi Previn의 에피소드에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리고 점점 늘어가는 Hapas(다른 인종과의 결혼으로 생긴 이세들, half라는 하와이 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상기에 간단히 언급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저들이 고통을 당할 때에 분연히 일어서서 투쟁을 하면서 그들의 권익, 인권을 보호 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들의 경험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III
1965년의 Immigration Act 이후에 물밀듯이 들어오는 우리 아시안 계의 이민 물결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시안들의 정치적, 사회적 파워는 아주 미약 하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말의 워싱톤 주지사로 당선던 Gary Locke 주시자, 그리고 하와이의 이노우에 상원의원, 한국계의 유창준 하원의원 등을 제외하면 극히 소수의 아시안 들이 중앙 정치 무대에 등장 했을 뿐이다. 근면성실로 대표되는 한인들의 경제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그런데 4-29를 상기 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인 안정적 삶에서 더 나아가 미 주류에서 한 축으로서의 정당한 대접을 받으려면 경제력 이외에도 중앙 정치와 공공 관직에 더 많은 아시안 들이 진출을 해야 하고, 바로 그것은 표의 힘으로 나타나야 한다. 최근 뉴저지 중부 에디슨 시에서 한인 시장이 탄생 한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바로 그런 면에서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는 한인유권자센터(소장 김동석)의 확약이 기대된다. 저자인 Helen Zia는 각 인종들이 겪어야 했던 많은 사건과 자료와 아시안들이 이민 초기부터 겪어야 했던 고통을 깨우쳐 줌과 동시에, 우리 세대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후손들이 이 미국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하는 많은 교훈을 알려준다.
지난 Tolino 동계 올림픽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미국 선수와 한국 선수가 경기를 하는데 누구를 응원 하느냐 물으니 아주 당연 하다는 듯이 미국 선수를 응원 한다고 한다. 어쩌면 예상했던 당연한 대답 이지만 저 아이들이 조금 더 커가면 자기들 Identity Crisis가 올 때쯤에는 이 책을 꼭 권 할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세대가, 그리고 그 이전에 우리 이민 선조들이 어떻게 지금의 지위를 획득 했는지 분명히 알게 하고 싶다. 우리 기성 세대가 각자 가지고 있는 꿈을 이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자녀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고, 그 자녀들은 우리 부모 세대가 걸어온 길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게 해 줄 필요가 있다. We have our dreams, Asian American Dreams.
고등학교 이상 자녀들 정도면 이 책을 충분히 소화 할 것으로 생각 된다. 자녀 들에게 꼭 필독을 권하고, 우리 어른들도 이런 분야에 관심을 좀 가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권하고 싶다.
Asian American Dreams. The Emergence of and American People, by Helen Zia, FSG 2000
하태돈 (Mar. 2006)
댓글목록 4
박영원님의 댓글
<br />
문장 하나 하나마다, 너무나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br />
<br />
선진국을 제대로 정확히 본 것 같습니다.<br />
<br />
아무 편견 없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동문들에 <br />
<br />
보여주심에 더욱 공감이 가는군요.<br />
<br />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한영님의 댓글
박수..... 짝짝작......
김종삼 84님의 댓글
박명근님의 댓글
저위의 Vincent Chin사건은 미시간에 유학왔을때 한참 이슈화 되었던 기억이 나군요<br />
New York의 다인종 시장에 사니 별로 못느끼고 사는 안이함에 빠진것 같습니다<br />
나를 돌아다 보게 해 준 우리 하동문의 글에 감사를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