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김시우
2006.07.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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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뒷 마당의 잔디 사이 사이에 피어나 잔디를 깍고 나면 머리에 땜빵한 것 같은 보기 싫은 형상을 만들어내지만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민들레를 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민들레는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로서 줄기가 없는 식물입니다. 대부분의 민들레는 노란 꽃을 피우지만 백색 하이얀 꽃을 피우는 민들레도 있습니다. 특히 백색의 민들레 꽃을 피우는 것은 황색의 꽃을 피우는 민들레에 비하여 약용으로서 효과가 탁월 할 뿐만 아니라 산사에서 사용하는 산중 음식의 나물 반찬으로 애용 되기도 합니다.
민들레 꽃은 밤이 되면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살포시 접었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활짝 만개를 합니다. 민들레는 약용으로도 일찍부터 잘 알려져 있어서 이른 봄 꽃이 피기 전에 채취한 민들레 줄기와 뿌리는 우리 몸의 열을 내리고 강장을 이롭게 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또한 줄기와 잎을 그늘에 말려서 차로 달여 마시면 강장 보호에 아주 좋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조금 전 산중 음식을 말씀 드렸지만 일반의 민가에서도 부드러운 민들레 잎을 채취하여 양념을 하여서 먹으면 맛이 쌉쌀한 것이 입안을 상쾌하게 하여 이른 봄 환절기에 떨어진 입 맛을 돋구는 에피타이져로서도 아주 훌륭한 푸성귀이기도 합니다.
민들레, 그 민들레가 언제부터인가 저에게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와 지금은 늘 친구처럼 친근감 있게 가까이 있어서 이를 지켜보노라면 때로는 대견스럽고 때로는 애처롭기도 하지만 송곳 하나만 들어갈 틈새가 있으면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어디서든지 살아나서 그 노랗고 청초한 꽃을 예쁘게 피운답니다. 마을 풀섶에서도, 길가의 보도 블록 사이에서도 그리고 바위의 틈바구니에서도 예의 그 노랗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답니다.
보통 꽃이란 한 군데에 여러 송이가 모여서 군락을 이루면서 피우면 통상적으로 더 더욱 더 아름답고 장관 스럽게 보입니다. 특히 야생화의 경우에 있어서는 대개의 경우 꽃의 크기가 왜소하여서 더 더욱 그런데도 민들레 꽃만은 여러 송이가 집체적으로 피는 것 보다 도로가에서, 길섶에서 바위틈에서 또는 보기에도 척박한 것 같은 잔디 사이에서 홀로 머리를 내밀고 살포시 부끄러운 듯 꽃망울을 트면 더 더욱 아름답게 보인 답니다. 여럿이 모여 있을 때보다 홀로 있어 아름다운 꽃, 민들레, 그래서 그 아름다움은 쉽게 물리지 아니하고 쉽게 천박하여 지지 않고 오랫동안 가슴에 새겨지기도 합니다.
민들레는 우리의 혼 입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들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역사는 지금의 한반도는 물론이지만 원래 그 뿌리를 따지면 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광활한 만주 대륙의 역사도 어찌 우리의 역사에서 제외할 수 있겠습니까? 개국의 근본인 단군의 신화가 아직도 살아서 숨쉬고 있으며 고구려의 웅장한 기상이 우리를 흥분 시킬 뿐만 아니라 고구려 이전의 졸본 부여를 비롯한 사군의 본거지도 지금의 이 비좁은 한반도가 아니라 바로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 건너편 백두산에서 서쪽을 향하여 한 없이 넓게 전개되는 개활지, 곧 지금의 중국 동북성 이였습니다.
민들레는 우리의 역사 입니다. 민들레는 바닥을 헤매는 식물입니다. 우뚝 홀로 서서 남을 지배하지 못하고 그저 낮은 곳 햇살이 드는 곳이라면 어디든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만족하면서 살아 갑니다. 여럿이 모여서 강하게 살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살아 갑니다. 그러나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은 곧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백의 민족의 기상을 오천년이나 잃지 않고서 유지하여 온 우리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어 종족을 보존하여 부끄로운 면도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오천년의 역사를 갈무리 하여온 원동력이고 지혜이기도 합니다. 늘 강한 식물의 틈바구니에서 또는 척박한 곳에서 살면서도 불평도 오만도 접어두고 집단으로는 살지 못하고 홀로 그렇게 역사의 맥을 오늘도 홀로 외로이 이어 가고 있습니다. 주변과는 무관하게 홀로 말입니다.
민들레는 도(道)이고 곧 선(禪) 입니다. 민들레는 높은 곳을 바라보지를 안습니다. 남방을 가면 불교를 믿는 신도들이 기도를 할 때 맨발로 법당으로 올라가서 절을 하는데 이마가 땅에 닿게 업 드리고 두 손은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하면서 절을 합니다. 즉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머리를 제일 낮은 곳에 있는 바닥에 까지 숙입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낮은 곳까지 낮추는 것 입니다. 민들레는 늘 낮은 곳에서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아무리 비옥한 땅에서도 민들레는 높게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민들레는 곧 도이기도 하고 선이기도 합니다. 교만하지도 않고 잘난 체도 하지 않고 늘 낮은 곳에서 그러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기쁨을 주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민들레는 조선의 여인 입니다. 민들레는 언제나 외롭게 자신의 역사를 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지혜는 그 어떤 식물보다도 크답니다. 강자들 사이에서 생존하고 보존하는 지혜야 말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보편적인 가치로 본다면 우리 여인네들의 지혜입니다. 그렇게 민들레는 씨앗이 여무는 순간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이 날개를 단 씨앗이 바람에 이리 저리 흩어져 자기의 삶을 개척하도록 날려 보낸답니다. 그래서 자세히 관찰을 하면 민들레의 개체수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 나간 자식들이 모두 건강하게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할 일들을 하면서 잘 살고 있으니까 말 입니다.
민들레는 우리가 닮아야 할 모습이기도 합니다. 작고 평범한 것 같지만 보면 볼수록 너무나 아름답기에 민들레를 닮고 싶습니다. 여럿이 몰려다니지 못해 힘이 없고 외롭게 보이지만 지혜가 많아 슬기롭게 살아 가는 그런 모습을 보곤 민들레를 닮고 싶답니다. 척박하고 힘든 곳에서도 스스로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고 당당하게 꽃 피우며 살아가는 억척 같은 모습을 보면 그만 민들레를 닮고 싶습니다. 담 벼락에 있는 송곳만한 틈새에서도 보도 블록의 사이의 칼날 같은 틈새도 놓치지 않고서 뿌리를 내리는 기민한 기회 포착 능력과 실행 능력을 갖고 있기에 민들레를 닮고 싶답니다. 씨앗을 바람에 날리어 자손의 번영을 구하는 즉, 버림으로써 얻음을 구하는 지혜가 가득한 민들레를 닮고 싶습니다. 금년에 못 피워도 조건을 만나면 내년에도 새 생명을 발아시키는 그 기다림을 민들레에게서 배우고 싶답니다. 그 작은 몸매에도 불구하고 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만 하는 민들레의 큰 가슴과 사랑을 배우고 싶답니다. 그리고 언제나 겸손과 무욕과 낮은 자세로만 세상을 임하는 민들레의 그 오만한 유아독존의 자세를 배우고 싶습니다
민들레 꽃은 밤이 되면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살포시 접었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활짝 만개를 합니다. 민들레는 약용으로도 일찍부터 잘 알려져 있어서 이른 봄 꽃이 피기 전에 채취한 민들레 줄기와 뿌리는 우리 몸의 열을 내리고 강장을 이롭게 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또한 줄기와 잎을 그늘에 말려서 차로 달여 마시면 강장 보호에 아주 좋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조금 전 산중 음식을 말씀 드렸지만 일반의 민가에서도 부드러운 민들레 잎을 채취하여 양념을 하여서 먹으면 맛이 쌉쌀한 것이 입안을 상쾌하게 하여 이른 봄 환절기에 떨어진 입 맛을 돋구는 에피타이져로서도 아주 훌륭한 푸성귀이기도 합니다.
민들레, 그 민들레가 언제부터인가 저에게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와 지금은 늘 친구처럼 친근감 있게 가까이 있어서 이를 지켜보노라면 때로는 대견스럽고 때로는 애처롭기도 하지만 송곳 하나만 들어갈 틈새가 있으면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어디서든지 살아나서 그 노랗고 청초한 꽃을 예쁘게 피운답니다. 마을 풀섶에서도, 길가의 보도 블록 사이에서도 그리고 바위의 틈바구니에서도 예의 그 노랗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답니다.
보통 꽃이란 한 군데에 여러 송이가 모여서 군락을 이루면서 피우면 통상적으로 더 더욱 더 아름답고 장관 스럽게 보입니다. 특히 야생화의 경우에 있어서는 대개의 경우 꽃의 크기가 왜소하여서 더 더욱 그런데도 민들레 꽃만은 여러 송이가 집체적으로 피는 것 보다 도로가에서, 길섶에서 바위틈에서 또는 보기에도 척박한 것 같은 잔디 사이에서 홀로 머리를 내밀고 살포시 부끄러운 듯 꽃망울을 트면 더 더욱 아름답게 보인 답니다. 여럿이 모여 있을 때보다 홀로 있어 아름다운 꽃, 민들레, 그래서 그 아름다움은 쉽게 물리지 아니하고 쉽게 천박하여 지지 않고 오랫동안 가슴에 새겨지기도 합니다.
민들레는 우리의 혼 입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들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역사는 지금의 한반도는 물론이지만 원래 그 뿌리를 따지면 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광활한 만주 대륙의 역사도 어찌 우리의 역사에서 제외할 수 있겠습니까? 개국의 근본인 단군의 신화가 아직도 살아서 숨쉬고 있으며 고구려의 웅장한 기상이 우리를 흥분 시킬 뿐만 아니라 고구려 이전의 졸본 부여를 비롯한 사군의 본거지도 지금의 이 비좁은 한반도가 아니라 바로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 건너편 백두산에서 서쪽을 향하여 한 없이 넓게 전개되는 개활지, 곧 지금의 중국 동북성 이였습니다.
민들레는 우리의 역사 입니다. 민들레는 바닥을 헤매는 식물입니다. 우뚝 홀로 서서 남을 지배하지 못하고 그저 낮은 곳 햇살이 드는 곳이라면 어디든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만족하면서 살아 갑니다. 여럿이 모여서 강하게 살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살아 갑니다. 그러나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은 곧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백의 민족의 기상을 오천년이나 잃지 않고서 유지하여 온 우리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어 종족을 보존하여 부끄로운 면도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오천년의 역사를 갈무리 하여온 원동력이고 지혜이기도 합니다. 늘 강한 식물의 틈바구니에서 또는 척박한 곳에서 살면서도 불평도 오만도 접어두고 집단으로는 살지 못하고 홀로 그렇게 역사의 맥을 오늘도 홀로 외로이 이어 가고 있습니다. 주변과는 무관하게 홀로 말입니다.
민들레는 도(道)이고 곧 선(禪) 입니다. 민들레는 높은 곳을 바라보지를 안습니다. 남방을 가면 불교를 믿는 신도들이 기도를 할 때 맨발로 법당으로 올라가서 절을 하는데 이마가 땅에 닿게 업 드리고 두 손은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하면서 절을 합니다. 즉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머리를 제일 낮은 곳에 있는 바닥에 까지 숙입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낮은 곳까지 낮추는 것 입니다. 민들레는 늘 낮은 곳에서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아무리 비옥한 땅에서도 민들레는 높게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민들레는 곧 도이기도 하고 선이기도 합니다. 교만하지도 않고 잘난 체도 하지 않고 늘 낮은 곳에서 그러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기쁨을 주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민들레는 조선의 여인 입니다. 민들레는 언제나 외롭게 자신의 역사를 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지혜는 그 어떤 식물보다도 크답니다. 강자들 사이에서 생존하고 보존하는 지혜야 말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보편적인 가치로 본다면 우리 여인네들의 지혜입니다. 그렇게 민들레는 씨앗이 여무는 순간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이 날개를 단 씨앗이 바람에 이리 저리 흩어져 자기의 삶을 개척하도록 날려 보낸답니다. 그래서 자세히 관찰을 하면 민들레의 개체수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 나간 자식들이 모두 건강하게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할 일들을 하면서 잘 살고 있으니까 말 입니다.
민들레는 우리가 닮아야 할 모습이기도 합니다. 작고 평범한 것 같지만 보면 볼수록 너무나 아름답기에 민들레를 닮고 싶습니다. 여럿이 몰려다니지 못해 힘이 없고 외롭게 보이지만 지혜가 많아 슬기롭게 살아 가는 그런 모습을 보곤 민들레를 닮고 싶답니다. 척박하고 힘든 곳에서도 스스로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고 당당하게 꽃 피우며 살아가는 억척 같은 모습을 보면 그만 민들레를 닮고 싶습니다. 담 벼락에 있는 송곳만한 틈새에서도 보도 블록의 사이의 칼날 같은 틈새도 놓치지 않고서 뿌리를 내리는 기민한 기회 포착 능력과 실행 능력을 갖고 있기에 민들레를 닮고 싶답니다. 씨앗을 바람에 날리어 자손의 번영을 구하는 즉, 버림으로써 얻음을 구하는 지혜가 가득한 민들레를 닮고 싶습니다. 금년에 못 피워도 조건을 만나면 내년에도 새 생명을 발아시키는 그 기다림을 민들레에게서 배우고 싶답니다. 그 작은 몸매에도 불구하고 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만 하는 민들레의 큰 가슴과 사랑을 배우고 싶답니다. 그리고 언제나 겸손과 무욕과 낮은 자세로만 세상을 임하는 민들레의 그 오만한 유아독존의 자세를 배우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2
김시우님의 댓글
박명근님의 댓글
동문중에서 이렇게 심미안 적으로 적은 사무에도 애정을 쏟고 좋은 글을 쓰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반갑습니다<br />
"천상천하 유아독존" 저의 젊은 시절에 즐겨 사용했던 단어입니다<br />
그러나 이제는 큰 품안에 안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br />
참 외로운 단어 입니다<br />
이제 정말 내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의 큰 품에 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br />
잘 읽었습니다<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