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포용정책때문에 북이 핵개발?
채승묵
2006.10.11 14:48
1,920
1
본문
사실 어제밤 늦게 아랫글에 댓글을 달았다가 아침에 지웠는데, 선배님이 올리신 글을 읽고 다시 올려봅니다.
포용정책때문에 북이 핵개발했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든 논리입니다.
제 의견인데, 정치적의견은 펀글이라 해도, 관리자의 이름으로 올리기 보다는, 본명으로 하는게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인하커뮤니티에 어울릴것 같습니다 (혹시 인하동문회에대한 그릇된 인상을 줄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선배님의 북핵에 대한 견해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하 어제 댓글을 다시 올립니다.
================================================
핵실험
사실 북한의 그 깊은 의도를 어찌 알겠습니까만, 북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북한은 미국이 두렵다" 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보루로 핵을 개발했다는 그들의 논리입니다.
이번 핵실험 이후 서서히 포용정책 무용론으로 여론몰이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예전과 같을 순 없겠죠. 북한도 핵실험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포용정책을 실패로 보는 시각대로 말하면, '포용정책을 했는데도 북한이 핵실험을 했으니까, 포용정책은 실패했다'입니다. 근데 문제는 포용정책이 아닙니다. 이 북핵문제에 관한한 한국은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고 싶어하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부시의 대북정책이 실패한겁니다.
이렇게 가정해봅시다. 미국이 북한과 적극적으로 양자회담에 나서서(북한이 원한것), 미국은 북한에 침략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주고, 북한은 동시에 모든 핵시설을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이 일어나지 않아서, 결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 그럼 남은 해결책이 뭡니까? 과연 전쟁일까요, 아님 미국이 지금이라도 양자회담을 하는 것일까요?
우리 입장에서는 무엇을 선택해야 합니까?
><120 Inha Rotc 싸이트에서 펌>
>
>▲ 허동현 경희대 교수
>
>“오대주(五大洲) 사람들이 다 조선이 위태롭다 하는데 조선인들만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하니, 집에 불이 난지도 모르고 재재거리는 처마 밑 제비나 참새 꼴과 무엇이 다르겠소.
>” 1880년 청국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국제정세에 무지한 조선왕조 당국자들에게 던진
>‘연작처당(燕雀處堂)’의 경구는 한 세기를 훌쩍 넘어,
> 핵실험이 자행된 오늘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에 비수로 꽂힌다.
>
>“조심스럽게 공경하는 행실을 보이고 강직하게 인의(仁義)를 말해 일본인들이
>고집스럽고 편협하게 대하더라도 우리는 관대하고 후하게 대했다.
>” 강화도조약(1876) 체결 후 일본에 간 수신사(修信使) 김기수가 남긴 말이다.
> “이웃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일으킬 여유가 없다.
>서양 문명국과 진퇴를 같이해 이웃이라 봐줄 것이 아니라 서양인의 방식에 따라
>대해야 한다.
>” 갑신정변(1884) 직후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쓴 ‘탈아론(脫亞論)’의
>한 구절이다.
>그때 우리의 실패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일본이 이미 서구 열강을 흉내 내는 아류(亞流) 제국주의로 표변한 상황에서
>도덕률에 기초한 교린의 의례(儀禮)외교는 무용지물이었듯이,
>북한의 핵무기가 우리의 심장을 겨누는 오늘 ‘민족’의 허명으로 북한을 포용하는
>햇볕정책은 물거품처럼 사그라질 수밖에 없는 잘못된 처방전임이 분명해졌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실현한 동맹국들,
>이를 따라 배우려 하지만 경쟁관계인 비동맹국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불량국가들로 세상을 삼분해 협력·경계·적대하는 탈냉전적
>전략을 구사하는 마당에,
>주변국에 대한 정책을 민족통일에 적대적인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양분하는
>‘자주’ 외교도 우리 목을 조이는 자충수임이 명약관화하다.
>
>미국의 눈으로 볼 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미 실현했고,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와 대테러 전쟁에 보조를 같이해 이라크에 파병했으며,
>‘두 나라 젊은이들의 피로 봉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동맹)을 맺은 한국은
>분명히 동맹국이다. 전작권과 미군의 자동개입을 맞바꾸는 조건으로 미국을 졸라
>얻어낸 한·미동맹은 어찌 보면 ‘굴욕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누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혜택을
>누릴 것이다”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예언대로 우리는 미국과의 동맹을 발판으로
>반세기 이상 평화를 누리고 경제번영과 다원적 시민사회도 일구어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위협을 일삼는 불량국가 북한을 ‘민족’의 이름으로 감싸안아온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의혹을 자아낸다.
>
>‘자주 동맹’과 ‘민족 공조’라는 이도 저도 아닌 참여정부의 모순적 대미·대북정책은
>포유류와 조류의 싸움에서 이편 저편을 오간 박쥐의 행동과 진배없어 보인다.
>이러한 회색빛 정책의 대가가 핵위협과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는 나라의 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 자랑하지만,
>이는 북한의 핵위협에 스스로 대처해 보라는 미국의 질책이기도 하다.
>세계 굴지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었다 한들 미국의 핵우산 없이는
>북한의 핵 위협에 무방비인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에,
>‘자주’가 종속을 부르는 자가당착을 범한다.
>“청국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대한제국은 세계만국의 공인되어온 바 자주독립하는 제국이니라.
>” 홍범14조(1895)와 대한국국제(1899)의 제1조가 외친 ‘자주’의 수사(修辭)가
>외세가 겨눈 창 끝에서 나라를 지키는 굳건한 방패가 되지 못했음을 우리는 안다.
>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시작된 개화기 이래 북한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기 지속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징은 열강의 이해가 엇갈리는
>세력 각축장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지난 역사는 주변국의 동향에 대한 위정자들의 오판과 무지가
>어떤 참극을 빚는지를 증언한다.
>구시대의 낡은 발상을 벗어나지 못한 전략이나 ‘자주’의 레토릭만으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우리의 활로(活路)를 열 수 없다는 역사의 경고를 되새길 때가 바로
>지금이다.
>
>허동현 · 경희대 교수 · 한국사.
>
>글의 내용에 제 생각과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어 올렸습니다.
>여러분들의 동의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한번 쯤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하여
>올린 것입니다
포용정책때문에 북이 핵개발했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든 논리입니다.
제 의견인데, 정치적의견은 펀글이라 해도, 관리자의 이름으로 올리기 보다는, 본명으로 하는게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인하커뮤니티에 어울릴것 같습니다 (혹시 인하동문회에대한 그릇된 인상을 줄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선배님의 북핵에 대한 견해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하 어제 댓글을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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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
사실 북한의 그 깊은 의도를 어찌 알겠습니까만, 북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북한은 미국이 두렵다" 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보루로 핵을 개발했다는 그들의 논리입니다.
이번 핵실험 이후 서서히 포용정책 무용론으로 여론몰이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예전과 같을 순 없겠죠. 북한도 핵실험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포용정책을 실패로 보는 시각대로 말하면, '포용정책을 했는데도 북한이 핵실험을 했으니까, 포용정책은 실패했다'입니다. 근데 문제는 포용정책이 아닙니다. 이 북핵문제에 관한한 한국은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고 싶어하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부시의 대북정책이 실패한겁니다.
이렇게 가정해봅시다. 미국이 북한과 적극적으로 양자회담에 나서서(북한이 원한것), 미국은 북한에 침략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주고, 북한은 동시에 모든 핵시설을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이 일어나지 않아서, 결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 그럼 남은 해결책이 뭡니까? 과연 전쟁일까요, 아님 미국이 지금이라도 양자회담을 하는 것일까요?
우리 입장에서는 무엇을 선택해야 합니까?
><120 Inha Rotc 싸이트에서 펌>
>
>▲ 허동현 경희대 교수
>
>“오대주(五大洲) 사람들이 다 조선이 위태롭다 하는데 조선인들만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하니, 집에 불이 난지도 모르고 재재거리는 처마 밑 제비나 참새 꼴과 무엇이 다르겠소.
>” 1880년 청국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국제정세에 무지한 조선왕조 당국자들에게 던진
>‘연작처당(燕雀處堂)’의 경구는 한 세기를 훌쩍 넘어,
> 핵실험이 자행된 오늘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에 비수로 꽂힌다.
>
>“조심스럽게 공경하는 행실을 보이고 강직하게 인의(仁義)를 말해 일본인들이
>고집스럽고 편협하게 대하더라도 우리는 관대하고 후하게 대했다.
>” 강화도조약(1876) 체결 후 일본에 간 수신사(修信使) 김기수가 남긴 말이다.
> “이웃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일으킬 여유가 없다.
>서양 문명국과 진퇴를 같이해 이웃이라 봐줄 것이 아니라 서양인의 방식에 따라
>대해야 한다.
>” 갑신정변(1884) 직후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쓴 ‘탈아론(脫亞論)’의
>한 구절이다.
>그때 우리의 실패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일본이 이미 서구 열강을 흉내 내는 아류(亞流) 제국주의로 표변한 상황에서
>도덕률에 기초한 교린의 의례(儀禮)외교는 무용지물이었듯이,
>북한의 핵무기가 우리의 심장을 겨누는 오늘 ‘민족’의 허명으로 북한을 포용하는
>햇볕정책은 물거품처럼 사그라질 수밖에 없는 잘못된 처방전임이 분명해졌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실현한 동맹국들,
>이를 따라 배우려 하지만 경쟁관계인 비동맹국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불량국가들로 세상을 삼분해 협력·경계·적대하는 탈냉전적
>전략을 구사하는 마당에,
>주변국에 대한 정책을 민족통일에 적대적인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양분하는
>‘자주’ 외교도 우리 목을 조이는 자충수임이 명약관화하다.
>
>미국의 눈으로 볼 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미 실현했고,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와 대테러 전쟁에 보조를 같이해 이라크에 파병했으며,
>‘두 나라 젊은이들의 피로 봉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동맹)을 맺은 한국은
>분명히 동맹국이다. 전작권과 미군의 자동개입을 맞바꾸는 조건으로 미국을 졸라
>얻어낸 한·미동맹은 어찌 보면 ‘굴욕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누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혜택을
>누릴 것이다”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예언대로 우리는 미국과의 동맹을 발판으로
>반세기 이상 평화를 누리고 경제번영과 다원적 시민사회도 일구어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위협을 일삼는 불량국가 북한을 ‘민족’의 이름으로 감싸안아온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의혹을 자아낸다.
>
>‘자주 동맹’과 ‘민족 공조’라는 이도 저도 아닌 참여정부의 모순적 대미·대북정책은
>포유류와 조류의 싸움에서 이편 저편을 오간 박쥐의 행동과 진배없어 보인다.
>이러한 회색빛 정책의 대가가 핵위협과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는 나라의 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 자랑하지만,
>이는 북한의 핵위협에 스스로 대처해 보라는 미국의 질책이기도 하다.
>세계 굴지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었다 한들 미국의 핵우산 없이는
>북한의 핵 위협에 무방비인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에,
>‘자주’가 종속을 부르는 자가당착을 범한다.
>“청국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대한제국은 세계만국의 공인되어온 바 자주독립하는 제국이니라.
>” 홍범14조(1895)와 대한국국제(1899)의 제1조가 외친 ‘자주’의 수사(修辭)가
>외세가 겨눈 창 끝에서 나라를 지키는 굳건한 방패가 되지 못했음을 우리는 안다.
>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시작된 개화기 이래 북한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기 지속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징은 열강의 이해가 엇갈리는
>세력 각축장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지난 역사는 주변국의 동향에 대한 위정자들의 오판과 무지가
>어떤 참극을 빚는지를 증언한다.
>구시대의 낡은 발상을 벗어나지 못한 전략이나 ‘자주’의 레토릭만으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우리의 활로(活路)를 열 수 없다는 역사의 경고를 되새길 때가 바로
>지금이다.
>
>허동현 · 경희대 교수 · 한국사.
>
>글의 내용에 제 생각과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어 올렸습니다.
>여러분들의 동의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한번 쯤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하여
>올린 것입니다
댓글목록 1
이성국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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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물의 왕국이라는 영상물 보기를 좋아 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여주는 사실 영상물입니다. 한데 디즈니랜드에서 동물을 주제로한 만화영화를 보면 이것은 동물들의 세상이 아닌 우리 인간들의 것으로 되어있음을 읽을수가 있습니다. 또 혹시 디스커버리 채널의 과학 영상물을 보셨는지요?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서도 영화의 장면을 따라해보기도 하는데 정말로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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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입증 할수있을까요? 영어의 알파벳 A to Z를 볼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작은 A로 부터 합니다. 그리고 항시 끝은 Z입니다. 한데 놀라운 것은 Z 다음이 바로 A 라는 것 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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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서 이성국<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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