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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자유게시판

<감동실화> 다시보는 유언장 (5회)

김시우
2007.03.22 21:27 1,11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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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면 서럽고 외로운 법이라 옹졸한 마음이 발동했다. 인하옥에서 거의 이름을 볼 수 없었던 후배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의 댓글에…  신년 연하장에 답신을 보내기는 커녕 전화 한 통 넣지 않은 후배였다. 순간 기분이 조금 삐딱해졌다.

그 후배의 행동이 전체 동문의 그것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지만, 그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보고 ‘내가 잘 못 살았구나’ 하는 자학심과 ‘ 내가 잘못한 것이 있나 ’ 하고 확대 해석하는 우를 범했다.  무시(無視) 와 무개념(無槪念) 은 분명히 다른데도 말이다.

이제 갓 사회인이 된 후배에게 ‘사회물정을 몰라 그렇겠지’ 하고  서운함을 접으려 하였지만, 그와 비슷한 나이일 적에 내가 한 행실과 비교하면서, 결국 그에게 가지고 있던 호감이 다소 사그러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도 나약하단 말인가. 병석에 누워 습관적으로 되풀이되는 같은 일상때문인지 내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책읽고 영화보고 틈틈히 글도 쓰고…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계속 반복되고 변화가 없을 때에는 싫증이 나는 법…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한번 형성된 매너리즘의 기운은 좀체 벗어나기 힘들다. 매너리즘의  병폐는 자신의 가지고 있던 고유의 독창성과 신선한 맛을 스스로도 인정 못한 채 잃어 버리고 현상유지에 만족하는 것이다. 염세주의에 빠져들 수도 있다.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있는 것 같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자산으로 내게 남아있을 평균수명과 나누어 보니 죽을 때까지 그럭 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주위에서 병으로, 사고로 쓰러져 인생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보면서 그가 평생 하고싶은 것 해보지도 못하고 돈과 명예를 쫓아 아둥 바둥하고 살았던 것을 떠올리니, 인생의 덧없음에 어떻게 사는 삶이 아름다운 것인지 정리가 안되어 방황하는 것이리라. 너무도 적극적이었던 내가 소극적으로 변하고 작아지는 것 같아 두려웠다. 매너리즘의 끝은 파멸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연말이면 백 수십 여장의 카드속지에 내용쓰고, 봉투에 이름 쓰는 것 보통 일이 아니다. 한국의 친지및 친구, 사업관련자, 미국 현지의 같은 인연의 사람들, 거기에다 고등학교, 대학교, 학군단등의  동문들을 위한 카드를 보태는 것에 갈등이 생긴다. 그러나 동문이 생업 관련자, 이웃, 매주 나가서 만나는 교인, 정기적으로 만나는 동호회 회원들보다 물리적 거리감이 있지만, 내가 쏟는 마음은 정 반대이기에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왕 보내는 김에 주소가 확인되는 동문에게는 모두 보냈다. ‘ 왜 이런 작업을 매년 하냐’ 며 씰룩거리는 아내도 옆에서 도와야만 했다. 나는 '일년 동안 제대로 안부 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요까짓 작은 정성으로 그 동안의 무심함과 무례함을 조금이나마 상쇄할 수 있으니 얼마나 효과적이냐'고 하면서 뾰루퉁한 아내를 다독인다. 일식당에 가서 싱싱한 스시를 한 끼만 대접하면 그 길게 나온 아내의 입은 이내 들어가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사실 아내도 이러는 나를 잘 이해한다. 그녀도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녀의 친구들의 연하장을 매년 받아보며 수 십년 된 그들과의 추억의 보따리를 풀기때문이다.

작년 연말 모임도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져 삐거덕 거린 비지네스 정리작업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여 참석하지 못했었다. 신년모임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던 나에게 ‘운전중에 급정거등 사고가 발생할 경우 척추고정대가 풀려  전신마비가 올 수 있다’ 는 의사의 무시무시한 협박같은 경고와 흉물스런 목 기브스가 나를 집에 가두었다.  결국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회비를 낼 겸, 아끼는 후배의 얼굴을 잠깐 볼 겸, 그를 만나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회비를 전했다.

그런데 인하옥 산책을 나섰다가 문득 그 회비까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옹졸한 마음에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나는 순간적으로 사탄에게 휘둘리고 있었던 것이다.

댓글목록 4

박명근님의 댓글

박명근 2007.03.22 21:37
  김동문, 나도 요즈음 정신없어서 좀 뜸하다<br />
오늘 점심을 먹다가 우리 인하옥을 기웃거려 보았더니 이거 너무 휭한것 같아서 한자 올렸더랬지요<br />
지금도 내일 미팅 자료를 정리하다간 잠깐 기울여 보니 우리 김동문의 글이 있구료<br />
솔직한 심정이 느껴 집니다<br />
건데 저는 연하장 쓰는것 약 10수년전부터 접었습니다<br />
<br />
아다시피 보험을 하다보니 거래처의 고객들이 보내 오는 것에 할 수 없이 답장하는 정도이구요<br />
평소 연락이 뜸하다가 카드 한장을 받을때 느끼는 저의 감정은 너무 형식적이다 느껴져서<br />
뭐 이것 나쁜지는 모르지남<br />
우리 뉴욕지부 쪽의 동문들이야 안부 없어도 늘 가까이 있는것 같아서 좋습니다<br />
내년에는 너무 그기에 마음 두지 않으면 홀가분해 질 것 같습니다

김시우님의 댓글

김시우 2007.03.22 21:53
  이거 채팅하는 것 같습니다. 글 올리자 마자 댓글이 올라오니... <br />
여기서 슬쩍 비춰진 제 감정은 이 수필의 주제가 아닙니다. 마지막을 도출하기 위한 소재에 불과하죠.<br />
다 사는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해하고 삽니다. 허허.<br />

길동돼랑님의 댓글

길동돼랑 2007.03.23 21:47
  저도 올초에 카드 딱 5장 보냈는데 ....<br />
누구에게 보낼까 정말 고민되더군여....

김시우님의 댓글

김시우 2007.03.28 22:13
  새해의 다짐을 담아 자신에게 한장, 사랑과 존경을 담아 아내에게 한장, 효심을 담아 부모님께 한 장, <br />
그리고 희망을 담아 자녀들에게...그러면 5장 될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