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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자유게시판

3017개의 심장을 안고 사는 여자

정창주
2007.11.09 14:51 1,474 1
  • - 첨부파일 : 20071109085502.960.0.jpg (93.6K) -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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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대 포탈사이트 중 한개인 DAUM의 감동뉴스를 본의 아니게 자주 보게 됩니다. 이메일 계정을 다음의 것을 쓰고 있어서 포탈 뉴스를 자주 볼 수 밖에 없는데, 그 중에 이번에 좋은 기사가 있어서 함게 나누고자 올려봅니다.



"과분한 대접 부담스러워" 호텔대신 미군부대에…

3017개의 심장을 안고 사는 여자가 있다. 미국인 해리엇 하지스(Harriet H. Hodges·90)씨는 30여 년간 한국의 심장병 어린이 3017명의 치료를 도와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다. 70, 80년대 의료기술이 뒤떨어진 우리나라에서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아이들이 하지스씨의 도움으로 지금 대부분 아이를 가진 부모가 됐다.

그의 일대기가 서울에서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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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7명의 한국 심장병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찾아준 하지스 여사. /한국국제문화교류협회 제공



사단법인 한국국제문화교류협회(KICA)는 하지스씨의 헌신을 높이 평가해 오는 12일 일대기 출간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 행사에 참석하려고 하지스씨가 7일 오후 한국에 왔다.

서울 시내의 미군부대에서 머물고 있는 하지스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90대 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목소리를 들려줬다.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했느냐?”고 묻자, “이게 어떻게 내가 다 한 일이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는데!”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많은 손주, 증손주들(심장병 수술 어린이들)을 떠올리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한국에 한 번 더 다녀와야지’하고 급한 마음에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한국과의 인연

하지스씨는 1964년 미 군사 고문단 참모장인 남편 고(故) 캐롤 하지스씨를 따라 한국에 왔다. 6년간 한국에 머무르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1972년 남편이 한미재단(American-Korean Founda tion)의 이사장직을 맡게 되자 다시 한국에 왔다.


당시 하지스씨는 남편으로부터 한 심장병 어린이 얘기를 들었다. 서울 용산 미8군 부대 식당 요리사의 딸 최신애(당시 12세)양이 선천성 심장질환에 걸렸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최양을 직접 본 하지스씨는 “병 때문에 얼굴과 입술, 그리고 사지가 새파래진 최양의 모습을 머리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스씨의 도움으로 최양은 미군병원과 서울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에선 수술을 할 수 없었다. 하지스씨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메트로폴리탄 메디컬센터’에서 어린이에게 무료로 심장병 수술을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최양을 보냈다. 수술에 성공한 최양은 당시 하지스 부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랫동안 파랗게 부어있던 내 손가락들이 붉게 제 색깔을 되찾았어요. 그리고 난생 처음 목욕도 했어요”라고 썼다.

◆아이들의 파란 입술 잊을 수 없어…

“입술이 파랗게 질린 아이를 안고 절실하게 도움을 청하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꼭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모든 것은 그때부터 시작됐죠.”

최양의 수술 소식이 알려지자 다음 날부터 하지스씨 집 앞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어머니들이 심장병을 앓는 자녀를 데리고 온 것이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가자 그는 심장병 어린이들이 해외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일명 ‘개심술 프로젝트(Open Heart Surgery Projcet)’였다.

하지스씨의 요청으로 어린이들은 우선 미군병원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기본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또 미국 전역의 종합병원에 편지를 보내 도움을 호소했다. 메트로폴리탄 메디컬센터는 매년 40명 안팎을 수술해주고 모든 치료비도 계속 부담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서서히 롱아일랜드 쥬위시 병원, 성 프란시스 병원 등에서 무료 치료를 해주겠다는 답변이 왔고, 나중에는 약 50개 병원이 동참의사를 밝혀왔다. 그를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아지자 1972년 11월 하지스씨는 아예 ‘한국 심장회’라는 이름의 사무실을 차려놓고 심장병 어린이를 도왔다.

◆“내가 이렇게 건강한데 당연히 도와야죠”

2003년 하지스씨는 일단 활동을 접었다. 고령(高齡) 탓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한 달에 10여차례 을지병원 등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곳에 전화해 일이 잘 돼가고 있는지 묻는다.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것은 아직도 나의 삶”이라고 그는 말했다.

“내가 이렇게 건강하고, 나의 두 아들도 다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니 내가 건강하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7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심장병 수술을 받았던 아이들과 부모들이 그를 맞았다. 하지스씨는 “그들을 보는 것이 너무 반갑고 행복하지만 이런 대접이 자신에게 너무 과분하다”고 했다. 서울시내 호텔에 묵지 않고 미군 부대에서 묵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 호텔에 한 번 묵었었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오히려 제가 너무 고맙고 미안했죠.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찾아오기 힘든 곳(미군부대)에 있으려고 해요.” 그는 인터뷰 내내 “행복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거 아세요? 내 원동력은 언제나 아이들이었어요. 건강해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아이들 말이에요.”


[변희원 기자 nastyb82@chosun.com]

댓글목록 1

임성택님의 댓글

임성택 2007.11.13 23:33
정말 감동 받는 스토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