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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자유게시판

터미날 (IV)

최강일
2008.12.27 14:04 882 1

본문

얼마를 잤을까 떠드는 소리에 눈을 떳습니다.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르치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가 누워있는 바로 앞에서 테이블 2개를 붙이고 둘러 앉아  
신나게 얘기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잠도 안자나?>
반쯤 눈을 뜨고 쳐다보니 곧 비행기를 탈 모양입니다.
한 가족인 듯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오랜만에 가는 온 가족 고국 여행에 흥분이 되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의 주의를 듣는 둥 마는 둥 아이들이 의자 주위를 뛰어 다니고
어른들은 반 이야기 반 웃음으로 화기애애 합니다.
참 인종에 상관없이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시 잠을 청하지만 바로 앞 의자에 앉는 그룹들이 바뀔 때 마다 눈이 떠 집니다.
뭔가 끊임없이 사다 먹으며 떠드는 10대 그룹.
반쯤 눈이 감긴 채 서로를 의지하고 앉아있는 20대 커플.
심각한 정치 얘기라도 하는듯 열변을 토하는 중장년의 아저씨
할머니의 잔소리에 웃음만 짓고 있는 할아버지
그 자리의 주인이 바뀔 때 마다 다양한 인생의 모습이 스쳐갑니다.
조병화 시인의 <의자>라는 시가 말했듯이
이제 아침을 몰고 오는 그 사람을 위해 열심히 자리를 비우는 것 같습니다.

아침이라는 단어에 그만 잠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새벽 4시. 일어나 바로 앉아 너무 가까이 있는 테이블을 약간 앞으로 밀었습니다.
두 손으로 눈을 부비고
양복을 다시 잘 입었습니다.
항상 여행때 마다 무겁게 가지고 다니던 랩탑을 집에 두고
달랑 블랙베리만 가지고 온 터라
컴 대신 프린트해온 아침 QT를 서류가방에서 꺼냈습니다.
안경을 벗자 점차 또렷히 보이기 시작하는 성경 말씀을
조용히 읽습니다.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 지는듯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나에게 말하는듯 합니다.

'Rather, as servants of God we commend ourselves in every way: in great endurance; in trouble;….
In beatings, imprisonments and riots, in hard work, sleepless nights and hunger;...'

본 회퍼의 글이 다시 떠 올랐습니다.
<Cost of Discipleship>…
바울은 정말 주님의 제자 된 값을 혹독히 치루었구나.
너무 쉽게 죄짓고 너무 쉽게 용서를 구하는 나는
정말 예수님의 주신 은혜를 너무 남용하는 <Cheap Grace>의 대표선수구나 싶었습니다.

깨달음과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댓글목록 1

장용석님의 댓글

장용석 2008.12.27 14:58
그냥 좀 늦은 비행기를 타려고 했었는데 눈때문에 연기되고 연기되어 새벽 3시가 넘어서 시택공항에 내렸습니다. 여전히 비행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이 듬성듬성 누워있는 공항을 보면서 선배님의 '터미널 시리즈'가 생각나더라구요. 지금은 비가 오지만 시애틀은 여전히 눈덮힌 곳이 많습니다. 터미널에서의 묵상을 통해서 '값비싼 은혜'를 받으셨길 바랍니다.